정부여! 큰 그림속에 KBS를 봐라

/ 우리의 주장 / 기자협회보 편집위원회

2008년 6월. 이른 아침 대문 틈을 촘촘히 매운 신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것들을 쭈욱 늘어놓아 보았다. 때마침 시계바늘 꼭 맞춰 쏟아져 나오는 방송들의 소리까지.

오늘은 대한민국의 언론을 말 그대로 ‘나래비(줄)’를 세웠다. 편이 갈린다.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을 떠나 일단 나눠진다. 지금의 언론들은 대한민국에 형성되는 여론의 소통 통로로 기능하기 보다 어느 한 담론의 생산자 역할을 하고 있다. 당파성을 지니는 경향이 더 강하다. 제각각 이익에 복무한다.

사회적 현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매듭을 지어 또 다른 담론의 등장을 촉진하기 보다 스스로 깃발 들고 “나를 따르라”고 외치고 있다. 쌍방향성 네트워크로 표현되는 21세기인데도 말이다. 언론의 이 같은 19세기적 오만이 ‘자신과 통하는 언론을 능동적으로 찾아 나선’ 새로운 시민형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이렇게 볼 때 언론은 그야말로 위기다. 심각한 위기다. 다양하고 수 많은 생각들의 크기를 담아내지 못하는 언론이, 불가피하다는 핑계로 당파성에 의지해 연명하는 처지로 전락하면 할수록 그 언론의 그릇에 만족하지 못하는 생각들은 다른 길을 찾아 나서고 현재로서는 그 통로가 인터넷이 되고 있는 듯 하다.

결국 순환고리는 반복될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상황은 언론끼리도 치고받는다. 건강한 비판과 논리 대결 보다 트집잡기, 흠집내기가 횡행한다. 어른스러움을 미처 갖추지 못한 어린 아이들의 싸움 같다. 언론은 언론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해야하는 혹은 할 수밖에 없는 기능이 있다. 언론인들이 셀러리맨의 일상 속에 혹은 정치인의 야망속에 그 기능을 등한시 한다면 그것은 우리나라의 불행이자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최근 연일 세력간 충돌의 전선이 되고 있는 KBS에 우리는 주목한다. 쇠고기에서 시작된 촛불과 과거 전쟁 영웅들의 가스통이 밝히고 있는 KBS. 마치 뺏느냐 뺏기느냐는 쟁탈전 같다. 그러나 KBS는 개인회사도 아니고 정권의 도구는 더더욱 아니다. 언론기관은 세력전에서 활약하는 장기알이 아니다. 정권이건 세력이건 파벌이건 KBS를 자기 편으로 삼으려 들지 마라, KBS는 그 어느 세력의 장수가 될 수 없다. 오히려 KBS를 지탱하는 수신료가 나오는 지갑들의 다양함만큼 끝없이 분기한 가치들이 공존해야할 광장이어야 한다.

특히 정파성이 극심해지는 작금의 현실 앞에 KBS는 다른 언론기관보다 상대적으로 사주나 광고, 권력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운 언론이 될 구조적인 이점을 갖고 있다는 점이 언론기관 KBS를 더욱 주목하는 이유다. KBS는 이러한 때일수록 보편적 방송 서비스, 전파의 공공,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사회적 소수자와 다양한 가치의 수호 등 KBS가 스스로자부심을 가져왔던 그 훌륭한 명제들에 충실해야한다.

동시에 높은 가치의 지킴이에 걸맞는 무균 무때 정신을 요구한다. 견제 받지 않은 권력의 타락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언론기관으로서 스스로 잘 알고 있는 내부의 비효율와 정치성을 이제 빨리 걷어내라. KBS 내부의 문제는 KBS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언론기관에 대한민국 언론의 중심이라는 수사는 영원히 돌아가지 않는다. KBS가 이 문제를 해결할 때 비로소 시장 논리로 공영성을 폄훼하려는 시도에 맞설 수 있고, 정부의 공기업이 아닌 국민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동시에 정부는 언론에 간섭하지 마라. 그것이 장악이건 정상화건 어떻게 표현하듯 간여하려하지 마라. 어느 방향으로 이끌려하지 마라. 시장에 맡겨라. 시장의 논리를 그 어느 시기보다 소중히 여기는 정부라면 KBS의 미래 더 나아가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큰 그림 속에서 KBS를 봐야한다. 더 나아가 과거 ‘땡전뉴스’로 표현됐던 불행했던 KBS의 예속성을 과감히 단절하는 업적을 우리 언론사에 남기는 성숙한 결단을 촉구한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