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추·천·작] 리영희 작<반세기의 신화

´진실´처럼 왜곡된 남북문제 의식 교정

백무현 대한매일 화백





시사만평가에게 ‘나의 추천작’을 의뢰한 것은 뭔가 색다른 볼거리(만화)를 제공해 달라는 뜻이겠지만, 나는 솔직히 그 쪽엔 색맹에 가깝다. 시사문제를 업으로 삼은 직업적 생리 탓인지 사회과학 관련 비평서적에 눈독을 많이 들임은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경의선을 만들면 적에게 통로를 열어주는 게 아니냐?”

며칠 전 야당 국회의원이 국정원장을 향해 따지며 다그치듯 물었다. 이를 놓칠세라 보수언론은 제법 눈에 띄는 활자까지 뽑아 남침을 상기케 하는 이 발언을 더욱 선전해 댔다.

과연 그럴까? 경의선이 뚫리고 경원선이 다시 연결되면 북의 남침통로가 되어 눈깜짝할 새 ‘적화통일’이라도 되는 걸까?

‘휴전선 남·북에는 천사도 악마도 없다’라는 부제를 달고 작년에 발간된(올초 개정증보판 발행) 대표적 지성 리영희선생의 통일비평집 <반세기의 신화>(도서출판 삼인·1만원)는 이런 무지의 발언과 반공 반북체제화의 나팔수로 타락한 언론의 광기, 반통일 이데올로기에 함몰된 대중들의 무지몽매함을 준열히 꾸짖는다.

선생이 머리말에서 밝힌 것처럼 “민족분단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남북문제에 관해서 우리들이 ‘진실’일 것으로 믿어 왔던 온갖 ‘거짓’들의 정체를 밝혀 보자”는 것이 이 책의 의도이다.

역시 이번에도 중심적 담론은 ‘왜곡된 의식의 교정’이다. ‘남북한 전쟁 능력 비교연구’에서 선생은 건국 이후 신앙처럼 고정화되어 버린 소위 북한의 ‘군사력 우위론’ 또는 ‘남침 전쟁론’의 허상을 분석적·실증적 방법으로 일거에 까발려 낸다. 기자 출신답게 방대하고 희귀한 고급 군사자료가 밑바탕임은 물론이다.

선생의 글은 거침이 없다. ‘미국군사동맹 체제의 본질’에선 평화를 두려워하는 미국의 두 얼굴과 군산복합체의 속내를 해부하고,‘한국 언론기관(인)의 평화기피증과 통일공포증’에선 광적 반공사상과 맹목적 애국주의로 무장된 언론들이 벌이는 파렴치한 남북 냉전주의를 질타하고 있다.

비판의 칼날은 남쪽에만 머물지 않는다. ‘남파간첩’의 실재를 부인하는 북쪽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강도높게 매질하고 이미 1년전에 “남파간첩 보내고 북파간첩 받자”라는 도발적인 제안도 서슴지 않는다.

작년 ‘서해교전’사태를 불러 왔던 ‘북방한계선’에 대한 우리들의 몰이해는 ‘북방한계선은 합법적 군사분계선인가?’제하의논문을 통해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20여년전에 나왔던 선생의 ‘전논’(전환시대의 논리)이 아직도 ‘유효’한 것처럼 <반세기의 신화> 또한 글을 쓴 시점이 지났다고 해서 ‘시효’가 지났다고 짐작했다간 큰 낭패다.

선생의 글은 땀과 분노와 희망으로 쓰여진 것이기에, 아직도 ‘신화’의 망령이 떠도는 시대이기에 계속 유효함을 믿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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