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이명박식' 소통인가!
편집위원회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8.08.06 14:11:54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채 6개월이 안됐다. 그 사이 대한민국의 시계바늘은 급속도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20~30년 전 군사정부 시절로 훌쩍 되돌아 간 느낌이다. 하지만 과거 회귀가 1987년 6월 항쟁 이후 지속돼 온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대한 전면부정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극히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무엇보다 두 달여의 촛불시위 정국 이후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방식을 보면 국민들을 단순히 무지몽매한 존재, 교육과 통제의 대상으로만 취급하는 것 같아 그 심각성이 더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에 대한 자신의 인식 수준을 처음 드러낸 것은 지난 6월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이다. 당시 그는 청와대 뒷산에 올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시위 물결을 보고 뼈저린 반성을 했다고 밝혔다. 취임 이후 앞만 보고 달리다보니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산 쇠고기의 경우 국가 간의 협약인 만큼 수입이 불가피하지만 국민들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광우병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자신의 주요 대선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 계획도 다수 국민이 반대한다면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많은 국민들은 다소 미흡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반성한다고 하니 일단 믿어보자는 쪽으로 입장을 정했다.
하지만 그 뒤 진행되는 일련의 행태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가 그저 ‘악어의 눈물’에 불과했음을 웅변하고 있다. 한마디로 거세게 타오르는 국민들의 저항을 일시적으로 모면하기 위해 ‘소통의 부족’이란 그럴듯한 말로 국민들을 기만한 것이다. 당시 국민들은 ‘소통의 부족’이란 말을 ‘대통령이 앞으로 국민들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듣고 받아들이겠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그가 말한 ‘소통의 부족’이란 ‘국민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청계천 복원이나 버스체계 개편 사례에서 보듯이 여전히 자신은 옳은데 무지몽매한 국민들이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차적인 책임은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전달하는 방송과 인터넷에 있다고 본 것이다.
대통령의 이런 인식을 반영한 듯 현 정권은 가능한 모든 국가기관을 동원해 국민들의 인식 교정에 나섰다. 이 과정에 과거 특정 정권의 사유물이나 다름없던 억압적인 권력기관들이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부활했다. 우선 방송 장악을 위해 검찰과 감사원, 국세청 등 사정기관이 총동원됐다. 이들은 KBS와 MBC PD수첩에 대해 사상 유례가 없는 현미경 조사를 하며 온갖 트집을 잡아 정권에 비판적인 방송을 옥죄고 있다. 그 결과 새로 임명되는 방송계 인사들은 YTN 구본홍 사장처럼 이명박 캠프에 있던 인물들로 채워지고 있다.
참여정부시절 ‘검사와의 대화’ 당시 현직 대통령에게 핏대를 세우던 검사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남은 건 ‘권력의 사냥개’ 뿐이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촛불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을 넘어,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현 정권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언급이 있으면 가차없이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은인자중하던 군도 뒤질세라 가세했다. 대학 교양교재까지 ‘불온서적’이란 딱지를 붙여 병사들의 의식통제에 나선 것이다. 20년 전에 끝난 줄 알았던 ‘전국 통장회의’가 다시 열리고 대학가에 정보과 형사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방식의 국정운영은 쿠데타로 집권해 권력의 정통성이 없던 군사정부가 즐겨 쓰던 수법이다. 한마디로 현 정부와 다른 견해나 주장을 용인하지 않고, 정부의 입장을 국민들의 머릿속에 일방적으로 주입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명박 정부는 과반에 달하는 득표로 당선됐다. 국회 역시 3분의 2에 가까운 의석을 장악했다. 그럼에도 무엇이 부족한가. 부족하다면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이명박식’ 사고일 뿐이다. 이런 식의 국정운영은 민주주의를 몸소 체험한 국민들의 인식과 충돌해 현 정권의 존립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