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먹은 논둑에 곡괭이질 그만두라
편집위원회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8.08.20 15:37:10
우리나라의 방송의 대표격인 공영방송 KBS의 사장으로 대통령 선거 캠프 인사가 거론된 것은 올해 초 선거 때 부터였다. 당시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설마’ 하는 낙관을 가졌던 것은 새 정부의 실용 정신이 갖는 합리성에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 사이 많은 사건과 시간이 흘렀다. KBS 이사회의 사장 제청이 임박한 지금 선거캠프에 있었던 유력한 후보중 한 명이 19일 보도자료를 통해 사장공모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선거에 관여했던 사람이 KBS 사장으로 선임되게 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기 때문이다.
만약 ‘국정철학’ 구현을 위한 인사차원에서 선거캠프에 관여했던 또 다른 인사가 사장으로 올 경우, 언론의 독립을 귀 따갑게 가르치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미 대통령 측근의 방송통신위원장 선임과 YTN 사장 선임 과정을 지켜봤다. KBS 사장 문제가 마무리(?)된 뒤에는 MBC 민영화, 이후 CBS, 서울신문 등을 손댄 다음, 신문-방송 겸영 허용 등 일련의 언론정책을 펼 것이라는 전망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만약 이러한 시나리오가 맞는다면 여론의 다양성이란 명제 아래 만들어졌던 신문법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나아가 이명박정권의 언론장악을 통한 수구, 보수적 통치는 극에 달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두 눈 부릅뜨고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은 언론유린과 자유민주주의의 탈을 쓴 오만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정부여! 이제 그만하라. 거기서 멈춰라. 탱탱하게 물 먹은 논둑에 무책임한 곡괭이질을 그만하라.
지난 정부 초기 역시 대통령 측근이 KBS 사장으로 내정됐다가 언론계의 반발에 직면해 결국 물러났다. 그래도 그때는 반항하는 언론계의 목소리를 내켜하지 않으면서도 귀는 귀울였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아예 들으려하지 않는다. 5년 전보다도 못한 상황이다. 언론인들의 소리를 ‘잃어버린 10년을 정상으로 되돌리는데 거쳐야할 순간의 고통’ 쯤으로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캠프 인사의 KBS 사장 임명 순간, 우리 언론인들은 그 ‘순간의 고통’이 ‘영원한 치부’가 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하면 하지 말아야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많은 사람을 많지 않은 일부라 하고, 정상으로 돌리는 과정쯤으로 해석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 무엇인가 개입을 하고 어떤 상태로 바꾸려하는 것 자체가 반민주적이다. 자의적인 법 해석과 그 해석을 뒷받침하는 엄정한 법집행. 이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법을 빙자해 행했던 그 짓거리와 다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사람이 반대하는 대통령 선거 캠프 인사의 공영방송 KBS 사장 선임은 곧 반민주적인 것이고, 바꿔 말하면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사라진 ‘독재’라는 망령의 부활로 인식한다는 점을 엄중히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