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젊은 그대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편집위원회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8.09.10 14:06:02
‘역시 별수 없다’고 생각했다. 웬만한 삼척동자까지도 정권이 바뀌니 KBS도 당연히 ‘땡이(李)뉴스’가 판치는 곳이 되겠구나 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KBS에는 ‘젊은 그들’이 있었다. 고목나무가 넘어져도 그루터기 새싹들은 움을 틔웠다.
KBS는 정연주 전 사장 체제 아래서 날선 정부비판의 선봉에 서서 이명박 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정부는 정 전 사장을 전례없이 검찰과 감사원까지 동원해가며 억지로 몰아냈다. KBS 사장 선임을 논의한답시고 베이징 올림픽을 틈타 청와대 정정길 대통령 실장, 이동관 대변인과 최시중 방통위원장 등이 밀실야합을 하다가 들통났다. 그래서 무마용으로 내세운 사람이 이병순 현 사장이다. 하지만 이른바 TK 출신인 이 사장은 ‘독일병정’이라는 별명답게 충실히 현 정권의 입맛에 맞춰 논란 소지가 있는 프로그램은 없애겠다고 발언했다. 이는 수구 언론에 눈엣가시인 미디어비평 같은 프로그램을 제거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대로 가면 정권이 바뀌는 것에 따라 보도와 논조가 왔다갔다 하는 전례를 되풀이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는데 결국 현실로 나타났다. 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불교계 시위를 9시뉴스에 보도하면서, 앵커 뒤 배경화면에 시위 피켓 속 ‘어청수 경찰청장 퇴진’이라는 글귀를 일부러 지운 채 내보낸 것이다. ‘5공’식 ‘땡전뉴스’가 되살아났음을 확인해주는 순간이었다.
노조까지도 명백히 낙하산 사장의 행태를 보여주는 신임 사장을 ‘공채 출신 첫 사장’이라며 자기 식구라고 두둔하고 나선 마당에 더 이상 KBS의 자정 노력은 기대할 수 없게 되는 순간, 예기치 못한 곳에서 어둠의 장막을 뚫고 함성의 빛발이 터져나왔다.
1백70명의, 2000년 입사 이후 기자들이 나선 것이다. 역시 젊음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안락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불의에 맞선 것이다. 이들은 사장인 ‘이선배’에게 호소했다. 진정 선배라면 정권의 언론장악 장단에 더 이상 놀아나지 말고 용퇴하라고. 아울러 영향력 1위, 신뢰성 1위인 공영방송 현장기자로서의 취재 자율성이 침해될 것을 우려했다. 어용학자 비판을 받는 유재천 이사장을 비롯한 ‘어용이사회’는 물러가라고 소리쳤다. 이같은 강단있는 행동과 공영방송에 대한 염원에 우리는 찬사를 보낸다.
KBS가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21세기 KBS의 미래를 이어갈 이들이 대변해준 것이다. 우리는 공영방송의 대표적인 예로 항상 영국의 BBC를 들어왔다. 국가이데올로기에 함몰돼 있는 일본의 NHK까지도 거론돼 왔지만 정작 KBS는 당당히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젊은 그들이 나섬으로 인해서 KBS도 최소한 할 말이 있게 됐다. KBS는 노무현 ‘참여정부’때도 낙하산 사장을 돌려보낸 적이 있다. KBS의 공영성은 정권이 바뀐다 해서 변질될 성질이 아니다. 이는 언론 본연의 사명이자 사회의 공기로서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작금의 YTN 사태에서 보듯 자기 사람 하나 사장으로 내려보낸다 해서 자기네식의 ‘공정보도’가 되리라는 착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대통령이 진정 국민과 소통부재의 해법을 찾고자한다면 언론장악 기도를 당장 그만둬야한다.
KBS의 젊은 그들은 무기력과 냉소주의를 뚫고 우리 동료 기자들을 일깨웠다. 언론자유는 바깥에서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기자들 스스로 챙기는 것임을. 젊은 그들이 있기에 KBS의 앞날에는 희망이 있다. 차제에 10년차 이상 되는 선배들도 후배들의 용기에 힘을 보태 취재 자율과 공정보도를 마땅히 지켜야 그들의 선배됨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