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인사' 누구를 위한 것인가

“대학살, 보복, 폭거….”

지난 주 전격 단행된 KBS 사원 인사를 두고 언론계 안팎에선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살육이 난무하는 전장에나 어울릴 법한 단어들이 의미하듯 유혈이 낭자한 이번 인사엔 이미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

‘정치권력의 방송장악’이라는 탐욕과 허상으로 가득한 역겨운 냄새 말이다. 정권이 바뀐 지 6개월 만에 신뢰도 1위, 영향력 1위의 KBS는 현 정부에 의해 요동쳤다. 마치 ‘전리품’으로 접수한 양 모든 합리적 의사수렴과 절차를 무시한 채 젊음을 바쳐 ‘방송의 공공성’을 지키려는 KBS 후배들을 인사라는 무기로 뿔뿔이 흐트러뜨려 버렸다. 현 경영진은 일부 기자들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인사예의인 ‘희망원’마저도 받지 않았다. 그야말로 백주대낮의 ‘인사테러’나 다름없다.

이번 인사는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너희들도 이런 꼴을 당할 수 있다’는 협박에 다름 아니다. ‘조용히 보신하고 줄 잘 서면 KBS에서 출세한다’는 냉소가 후배들 몸에 체득되고 있으며, 불길한 패배주의의 냄새가 지독하다”는 한 KBS 기자의 글은 권력에 대한 굴종과 순응을 강요하는 이번 인사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준다.

방송민주화의 시계바늘을 몇 바퀴나 거꾸로 돌린 이번 인사가 더욱 역겨운 것은 정권의 방송장악을 위해 전면에 나서고 있는 이병순 KBS 사장 등 경영진의 한심한 답변이다. 지난 주 국회 답변에서 이 사장은 ‘인사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끝까지 책임을 회피했다. 더구나 보도본부장은 ‘이념편향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는 말로 ‘방송 공공성’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도 없는 ‘무지’와 ‘역편향’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문제는 앞으로도 상황이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촛불시위대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명박산성’(컨테이너 산성)을 쌓았던 이 정부와 낙하산 사장 반대를 외치는 KBS 구성원들의 목소리에 문을 걸어 잠근 채 경찰병력에 둘러싸여 취임식을 강행했던 이병순 사장의 소통방식이 너무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최근 방송대상 시상식에서 한 수상자는 정권의 방송장악에 앞장선 일부 방송인들의 행태를 “사냥개(走狗)”라고 통렬히 비판했다. 전리품으로 접수한 방송 권력으로 비상식적, 반역사적 인사 전횡을 일삼으며 이미 관 속에 들어간 ‘정권 홍보’의 음습한 구태를 되살리려는 KBS 신임 경영진의 모습에서 우리는 바로 그 走狗의 모습을 본다. 하지만 권력에 취한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게 있다. 권력은 유한하지만 방송과 국민은 영원하다는 단순명료한 진리 말이다.

한때 위세는 부릴 수 있겠지만 사냥개는 결국 팽(烹)당할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주체는 눈을 부릅뜬 국민과 이번 인사로 전국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진, ‘공영방송수호’의 씨앗이 될 KBS의 젊은 후배들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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