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안 반대한다

우리의 주장 / 편집위원회

한나라당이 최근 신문법, 방송법, 언론중재법 등 미디어관련 7개 법안을 당론으로 확정해 발표했다.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한 신문법, 사이버 모욕죄를 도입한 정보통신망법, 인터넷포털 등을 중재대상에 포함한 언론중재법 등 법안마다 모두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방송법에 대한 논란이 크다.

나경원 한나라당 제6정조위원장이 대표발의한 한나라당 방송법 개정안을 보면, 모든 기업과 신문·통신사가 지상파 방송에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전면 해제했다. 자산규모 10조원 이상 기업과 신문·통신사는 20%까지, 10조원 미만 기업은 49%까지 지상파 방송 지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진출 허용 기준은 자산 총액 3조원 미만이었다. 이것을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법 시행령을 개정해 10조원 미만으로 대폭 상향 조정했다. 이 과정에서도 엄청난 파문과 논란이 일었다. 3조원을 기준으로 하면 55개 대기업의 방송사업 진출이 제한되지만 10조원으로 확대하면 23개 대기업만 제외하고 모든 대기업이 지상파 방송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나라당 법안은 아예 이런 기준마저 없애겠다는 것이다. 자산총액 144조원인 삼성, 자산총액 74조원인 현대자동차, 72조원인 SK, 57조원인 LG 등 ‘4대 재벌’을 비롯해 재계 23위인 CJ그룹까지 자산총액 10조원 이상 대기업이 모두 지상파 방송에 진출할 길을 열겠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10대 대기업의 현금 보유액은 40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이 조·중·동 등 거대 신문사와 컨소시엄을 형성하면 지상파 방송을 만드는 것은 ‘식은 죽 먹기’와 다름없다.

게다가 자산규모가 10조원 이하인 대기업은 지상파 방송 지분의 49%까지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 2곳과 신문사 1곳 등 셋이 손잡으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지분을 누릴 수 있다. 즉, 자산규모 10조원 이상 기업(20%)과 신문·통신사(20%), 그리고 자산규모 10조원 미만 기업(49%)이 손잡으면 지분율은 89%에 이른다.

그동안 방송법에서 대기업과 신문사의 지상파 방송 진출을 제한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한마디로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인 여론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한결같이 보수 일색의 목소리를 낼 것이 뻔한 대기업과 조·중·동이 지상파 방송까지 진출한다면 우리나라 주요 신문과 방송은 모두 똑같은 목소리로 우리 사회의 한쪽 입장만 대변하게 될 것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신문·방송 겸영 허용에 대해 세계적 추세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미국은 우리나라 방송통신위원회의 모델이 된 미연방통신위원회에서 최근 신문·방송 겸영을 부결시킨 바 있고, 영국의 경우에도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의 문어발식 언론장악을 규제하기 위한 법안을 만들었다. 또 독일이나 프랑스도 여론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 신문·방송 겸영을 지역별로 매우 까다롭고 제한적으로만 허용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1공영 다민영’이라는 골격을 갖추려고 KBS2-TV와 MBC를 민영화해 두 방송사를 대기업과 조·중·동에 넘기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1공영 다민영’은 방송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파괴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게다가 세계적인 추세도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추세는 오히려 공영방송을 늘리고 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하고 여론 다양성을 묵살하는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에 분명히 반대한다.

편집위원회 webmaste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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