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저명인사 초청행사' 실익 있나?


   
 
  ▲ 박경철 안동 신세계병원장  
 
세계적 지명도를 가진 ‘저명인사’들의 한국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경제위기의 해법을 찾기 위한 세미나와 국제 심포지엄이 서울에서 자주 열면서 거기에 초청되는 저명인사들의 면면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물론 열리는 행사만큼 주최측도 다양하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곳은 언론사다. 두 번째는 정부기관. 그 다음으로는 지자체나 단체들이라고 한다.(물론 공식 통계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행사의 제목들도 엇비슷하다. 물론 석학들을 모시고 지혜를 듣는 자리의 제목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위기속에 길을 묻다’가 아니면 ‘대한민국이 나아갈 길’ 등 상투적인 주제들이 대부분이다.

이들 행사에 초대되는 석학들의 면면은 일단 화려하다. 작금의 경제위기를 반영한 듯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나, 이번 위기를 예견해서 이름이 더 잘 알려진 ‘누리엘 루비니 교수’와 같은 학자들은 우선 섭외 일순위로 알려져 있다. 거기다 ‘조지 소로스’나 ‘짐 로저스’와 같은 헤지펀드 운용자에, 이제는 은퇴했다고 알려진 ‘피터 린치’나 ‘워런 버핏’의 이름도 보인다. 심지어 ‘리콴유’ 싱가포르 전 수상이나 ‘빌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의 이름과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의 이름까지 보인다. 이쯤되면 그야말로 글로벌 석학, 내지는 저명인사들의 통찰력과 혜안이 한국에 모두 모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그러나 문제는 내용이다. 이런 국제 행사를 기획하거나 섭외를 담당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들을 초빙하기 위해서는 보통 수십만 달러의 강연료와 체제비, 심지어 수행원들까지 항공기 1등석과 호텔 스위트룸을 제공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결과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이들이 다녀간 심포지엄의 내용에서 우리가 익히 접하던 이야기 외에 달리 특별한 이야기를 들은 바는 별로 없다. 이들이 혹여 강연회 참석자들에게만 제한적인 영감과 통찰력을 전수하고 떠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들이 심포지엄에서 발제한 이야기가 현안에 대한 ‘어젠다’로 회자된 사례는 쉽게 볼 수 없다. 결국 상당수의 저명인사들은 생색내기용 행사에 들러리로 참여한 것이고, 우리는 그들을 들러리로 세우기 위해 피같은 외화를 물 쓰듯 펑펑 사용한 셈이다.

작금의 경제위기에서 나름대로 해법을 찾으려는 노력을 모두 폄훼할 수는 없지만 한 푼의 달러가 아쉬워 무려 4% 이상의 가산금리를 물어가며 외평채 30억 달러를 발행하고, 외환 보유고를 유지하기 위해 통화스와프로 마이어스 통장까지 끌어쓰는 나라에서 이런 식의 국제행사들이 모두 정당화되기는 심정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행사를 주최하는 자금에 대한 의문이다. 언론사라면 협찬이고, 정부라면 세금이며, 국가 행사나 프로젝트 기획단에서 진행하는 것이라면 지자체나 공공자금일 것이다.

지금 국가적으로 기업 살리기와 일자리 나누기 같은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기업은 투명해야 하고 준조세는 사라져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런 행사들의 뒷이야기를 들어보면 예외없이 기업의 홍보 담당자들이 불만을 토로한다. 기업이 불필요한 지출을 하면 그만큼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국가나 공공기관이 그러하면 혈세가 새나간다. 이 대목에서 언론의 역할은 명백하다. 만약 언론사 주최의 행사라면 그 필요성과 의미를 건강하게 돌아보고, 공공기관 주최의 행사라면 가차없이 따져보고 펜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비록 국제행사를 사례로 들긴 했지만. 지금 시중에는 너무 빠른 속도로 돈이 풀려나가서 ‘눈먼 돈들이 돌아다닌다’고들 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먼저 보는 놈이 임자’라고까지 말한다. 이럴수록 언론은 고도의 도덕성을 연마하고, ‘사회의 건강성을 담보하는 공기’로서의 건강한 감시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독자가 바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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