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방송통신' 성장논리의 신화


   
 
  ▲ 정용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대통령의 키워드가 ‘대운하’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으로 바뀌었다. 대운하 키워드가 아직도 ‘4대강 살리기’로 잔재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국민들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생각을 접은 것은 잘 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저탄소 녹색성장을 통하여 지구온난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세계경제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구상도 의미있는 국가전략이라고 판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한마디에 모든 공무원과 국민들이 저탄소 녹색성장에 매달리는 것은 지나치다. 대통령의 생각과 다른 사람도 있고, 녹색성장과는 무관한 분야를 인정하는 것이 다양성이 보장되는 민주사회이다.

방송통신 분야도 비교적 저탄소 녹색성장과 관련성이 적은 분야 중 하나이다. 굳이 연결시키면 질 좋은 프로그램과 공익광고를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푸른 나무를 가꾸는’ 정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가 장악한 방송통신위원회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키워드에 방송통신산업의 모든 논리를 맞추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녹색방송통신 서비스의 활성화, 그린네트워크 구축, 녹색일자리 창출이라는 생소한 업무에 매진하겠다고 하였다.

얼핏 보기에 그럴싸한 업무보고의 내용을 들여다보니 한마디로 난센스였다. 녹색방송통신서비스의 활성화는 다름아닌 IPTV와 디지털케이블TV의 쌍방향 기능을 이용하여 전자민원, 원격의료, 원격교육을 지원하면, 교통에너지가 절약되어 저탄소 녹색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틀린 것은 하나도 없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과거부터 추진하였던 뉴미디어 방송산업 발전전략의 말바꾸기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막대한 공공재원을 특정 뉴미디어인 IPTV의 학교보급으로 사업자간 형평성 시비를 불러일으키는 실정이다. 이미 학교에는 사교육 방지차원에서 설치된 EBS교육용 위성방송망과 초고속인터넷망이 충분히 보급되어 있다. IPTV만 자식이고,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케이블TV와 위성방송은 ‘주워 온 자식’인가라는 볼멘소리마저 나오는 형편이다.

그린네트워크 구축사업도 방송중계용 기지국과 중계국을 에너지 절약형으로 바꾸어 녹색성장에 기여한다는 것이 주된 골자이다. 이 또한 방송기술 고도화 사업에 의해 추진되는 사업으로 새로운 내용이 없다. 방송은 지상파방송은 물론이고 위성방송까지 에너지와 장비의 소모에도 불구하고 국가안보와 방송사고에 대비하여 예비기지국과 위성까지 운용하고 있다. 차라리 이를 없애거나 줄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녹색일자리 창출사업도 어처구니가 없다. 방송통신 콘텐츠 제작교육과, 창업을 지원하여 녹색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방송통신분야에서 콘텐츠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모든 방송플랫폼사업자가 콘텐츠 제작경쟁에 뛰어들어 선두주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녹색성장의 논리가 없어도 가능하며, 국가의 지원도 충분하게 이루어져 왔다.

이처럼 기존의 방송통신서비스 발전, 에너지절약형 네트워크, 콘텐츠 제작을 녹색 이름으로 포장만 달리한 것이다. 최근 전국의 거리에는 갑자기 자전거 캠페인이 넘치고 있으며, 초등학교 정문까지 녹색성장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자전거도시라고 자처하는 전주에서 자주 자전거 출근을 하는 필자로서는 자전거도로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불법차량주차와 도로의 굴곡 때문에 교통사고가 날 위험에 있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자전거 출퇴근은 점진적인 인프라 구축으로 안전한 교통수단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지, 여권실세까지 나서서 캠페인을 벌일 일은 아니다.

녹색방송통신산업의 성장논리를 지켜보면서 디지털화되고 민주적 공동체가 되어야 할 21세기에 박정희식의 개발논리가 잔존한 것 같아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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