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시대 미디어정책, 원칙이 필요하다
지성우 단국대 법학과 교수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9.05.20 14:44:33
미디어법 개정논의가 시작된 지도 1년여가 되어간다. 융합의 속도에 대하여 여러 가지 전망이 교차하였으나,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에서는 네트워크, 단말기, 콘텐츠 등 각 분야에서 거의 동시에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미 IP를 기반으로 하는 영상서비스가 불완전하게나마 상용화되었고, 방송과 통신을 동시에 완벽하게 이용할 수 있는 단말기 역시 조만간 개발·보급될 것이다. 콘텐츠 역시 방송과 통신서비스 각각에 적합한 것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이렇게 미디어의 융합이 각 분야에서 진전되고 다수의 사업자가 등장하면서 사업자들간 경쟁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디어의 사회·문화적 측면을 강조하는 관점에서는 미디어 융합시대에도 미디어가 가지는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여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본다. 반대로 경제적 관점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미디어 분야 역시 산업의 일종으로서 경쟁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더 나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미디어의 운영을 위하여 어느 정도의 자본과 상호 겸영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양측의 견해가 크게 대립한다.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수익악화로 신용등급이 크게 하락하고, 우리의 지상파방송사들이 비상경영을 선포하고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향후 미디어정책 역시 과거와 같이 안정적인 수익을 바탕으로 하던 때와는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분야는 일반적인 산업과는 다른 기능을 하고 있으므로 완전히 경쟁에 노출시킬 경우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향후 각 미디어사업자들은 미디어의 경제적 독립을 담보하면서도 재무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효율적인 운영을 해야 하는 이중고를 안게 될 것이다. 정책담당자들에게 결코 풀기 쉽지 않은 과제이기는 하지만 미디어정책은 원칙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미디어가 가지는 사회·문화적 기능과 경제적 기능이 조화되도록 하여야 한다. 미디어는 단순히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것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과 정치적 의사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미디어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단순히 미디어를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하기보다는 민주적 시민양성의 기제로서의 성격도 있다는 점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둘째, 미디어사업자들간에 공정한 경쟁과 협력관계가 증진되도록 하여야 한다.
지난 10여 년간 미디어산업은 양적으로 크게 성장한 반면, 미디어융합을 통한 경제적 가치의 총량을 제고하는 데는 다소 미흡했던 것 같다. 현재는 한정된 시장에서 신문, 방송, 인터넷 등 다양한 매체들이 경쟁하고 있는데 상호 출혈적인 경쟁보다는 각 미디어들이 콘텐츠를 매개로 선순환구조를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셋째, 중앙미디어에 대한 지원과 아울러 지역미디어의 활성화 문제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지역신문과 지역방송 등에 대한 지원과 활성화의 문제는 미디어 정책에 있어 핵심 논제 중 하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지역미디어가 지역민들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효과적이고 체계적인 방안이 강구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지역미디어에 국고 등의 자금으로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안, 간접적인 재정확보 방안 등 다양한 방법들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미디어 분야는 언론정보학, 법학, 사회학, 경제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가 교차하는 복잡다단한 영역이다. 더욱이 미디어간의 융합과 새로운 매체의 등장으로 정책결정 역시 어려워지고 있다. 원칙에 근거한 중심잡기가 필요한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