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권력에 맞섰던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

그는 “너무 슬퍼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며 떠났다. 그러나 사람들은 슬퍼하고 원망한다. 이 비극을 그저 담담하게 받아들일 염치는 그 누구도 없어서일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한 책임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언론 역시 예외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박연차 리스트’관련 언론 보도에 문제를 제기한 대목은 최근 검찰의 무차별적 ‘언론 플레이’와 이를 검증 없이 받아쓰는 데 급급했던 언론 행태의 한 단면을 드러낸다.

지난달 12일 노 전 대통령은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해명과 방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란 글을 올렸다. “언론들이 근거 없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 놓아서 사건의 본질이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가고 있는 것 같다. 소재는 주로 검찰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들이 이미 기정사실로 보도가 되고 있으니 해명과 방어가 필요할 것 같다”는 내용이다.

노 전 대통령이 언론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식 입장을 밝히는 것을 그가 극도로 부담스러워했던 것을 감안하면, 오죽했으면 이를 무릅쓰면서까지 그랬을까 싶다.

노 전 대통령과 언론의 관계는 내내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그는 “언론의 자유는 언론 사주의 특권과는 구분되어야 한다”며 보수언론 권력과 정면으로 맞설 것임을 공공연히 밝혔다. 기사를 빼달라는 로비 대신 정정·반론보도를 요청하는 그의 정공법은 건건이 큰 불협화음을 내며 언론과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언론과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은 것은 참여정부 말기의 ‘기자실 대못질’로 요약되는, 이른바 ‘언론 선진화’정책이었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언론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 적대적 언론관계로 말미암은 여론의 거센 역풍은 임기 말 권력 누수를 가속화했고 이 정책은 결과적으로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어느 정치인도 노 전 대통령만큼 언론에 맞선 경우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언론과의 불편한 관계가 최근 그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한 언론의 태도에 그대로 투영됐으리란 짐작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죄가 있다면 누구라도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조사하고 밝혀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이 여기에 예외가 되서는 안 된다는 점은 자명하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와 언론의 보도는 법과 원칙에 따른 실체의 규명이 아니라 철저하게 ‘노무현 괴롭히기’로 방향이 설정된 듯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주변 인사는 물론 아내, 딸, 아들, 형님, 조카까지 모조리 소환 조사가 이뤄졌고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 관행과는 매우 차별되게 그 과정이 지나치게 상세하게 공개됐다. 매일같이 검찰 관계자의 말을 빌려 언론은 범죄 혐의와 관련이 없는 내용까지도 시시콜콜 수사 상황을 중계하면서 노무현을 시정잡배와 범법자로 만들어 나갔다. 그는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고 토로했다.

언론은 오늘도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나’란 물음에 대한 여러 분석들을 내놓기에 바쁘지만 정작 언론 스스로를 돌아보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언론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화와 정치개혁에 기여한 대통령, 지역주의에 맞서 싸운 대통령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우리는 특히 그가 권위주의와 언론권력에 맞섰던 최초의 대통령으로서 그를 기억할 것이다. 앞으로 언론개혁에 기여할 부분이 많았을 거라는 점에서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다. 한국기자협회 8천여 회원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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