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서거와 이명박 정부의 방송정책 전환
정용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9.05.27 15:22:04
|
|
|
|
|
▲ 정용준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
|
대기업과 신문사의 지상파방송 참여를 주된 골자로 하는 이명박 정부의 시장주의 방송정책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전환의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통령선거에 도움을 준 주요 신문사에 대한 보답 차원으로 시작된 미디어 관련법 개정이 국회에서의 격돌을 거쳐, 사회적 합의기구인 미디어위원회의 활동도 조만간에 마무리될 것이다. 일정대로라면 여야의 새로운 원내대표들이 6월 임시국회에서 미디어관계법을 둘러싸고 충돌을 하였을 것이고 여당의 날치기 통과와 후속작업으로 공영방송의 민영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6월의 미디어법 처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불확실하다. 필자의 판단으로는 조문정국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되고 나면 이명박 정부가 다시 강경일변도로 나갈 가능성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이명박 정부의 시장주의 방송정책이 더 이상 추진 명분을 잃었다는 것이다. 전직대통령이 죽음으로 책임을 지면서 사회적 통합을 부탁한 마당에 더 이상 과거정부의 실정과 부도덕성을 거론하기 힘들어졌고, 좌로 치우친 방송을 중립으로 돌리겠다는 시장주의 방송정책도 돌릴 곳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가는 미디어위원회의 활동은 방송정책에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다. 자료의 축적과 국민 여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방송이념의 대결은 합리적인 방송정책보다 소모적인 상처만 남긴다는 사실이다. 30년간 유지되어 온 공익적 방송정책의 전환은 급진적이기보다는 몇 년간의 조사와 연구 활동을 거친 점진적 과정이어야 한다. 또한 지역별로 열리고 있는 지역공청회는 방송정책에서 지역의 목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뿐만 아니라 여야의 방송정책 대결이 보다 유연하게 타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면 대기업의 참여는 허용하되 이보다 영향력이 큰 신문방송 겸영은 금지한다든지, 전국미디어시장에 앞서서 지역의 신문방송겸영을 허용하여 그 결과를 검토하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처음부터 노무현 정부의 방송정책을 좌파적인 것으로, 이명박 정부의 방송정책을 우파적인 것으로 이분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청와대가 독점하였던 방송권력을 시청자와 시민사회에 배분한 것이나, 방송의 글로벌 국제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신문방송겸영 완화와 대기업 참여를 허용하겠다는 발상 자체를 우파적인 것으로 매도하기는 힘들다. 공익주의와 시장주의가 오랫동안 이념적 대결을 하였지만 공익성과 산업경쟁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 방송정책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바보’라 불리며 지역분권 원칙을 고집하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토록 자신을 괴롭혔던 검찰과 현정부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에게 묻어 있는 티끌에 대해 죽음으로서 책임을 다하였다.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강경일변도의 시장주의 방송정책보다는 노무현 정부의 방송정책이 남긴 시청자주권이라는 아름다운 유산을 계승하여야 한다.
과거정부의 흠집을 더 이상 새로운 정부의 정당화 도구로 삼아서는 안될 것이다. 강경일변도의 급진적 방송정책 전환은 제2의 촛불시위와 같은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여당과 야당이, 시장주의와 공익주의 방송학자가, 서울과 지역방송사들이 함께 고민하여 점진적으로 방송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유연한 방송정책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