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 KBS 라디오 시사플러스 진행자) | ||
그러나 당시 제안은 너무 달콤했다. 당장 기사에 대한 부담도 없었다. 대학생과 함께하는 배낭여행이라는 성격도 그럴싸했다. 무엇보다 격무에 시달린 심신은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아우성이었다. 결국 제안을 받아들이고야 말았다. 물론 취재 여행 이후 비용을 댄 기업 관련 기사는 한 건도 쓰지 않았다. 여행 기간 중 경비는 내가 직접 충당했다. 그런데도 보름여 일정 끝에 남은 것은 회한뿐이었다. 아니, 기자직을 수행하는 내내 찜찜한 구석으로 남았다.
기자를 그만둔 지 올해로 꼭 10년째다. 그간의 언론 발전상을 감안할 때, 난 우리 언론이후원성 취재에 대해 나름의 원칙을 만들었다고 짐작했다. 후배 기자들만은 그런 고민들로부터 자유로워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런 내 판단이 잘못됐다는 확신이 생겼다. 글로벌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기업의 홍보성 기사가 눈에 띄게 늘고 있어서다. 아예 기업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는 기사마저 급증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이 후원성 취재 끝에 작성한 기사들이다.
15일 거의 모든 언론이 국내 한 조선사의 핀란드 계열사 탐방기를 실었다. 그곳에서 건조 중인 세계 최대의 크루즈선에 대한 보도도 빼놓지 않았다. ‘바다 위의 오아시스’라거나 ‘바다 위의 놀이동산’, ‘꿈의 크루즈’처럼 해당 선박에 대한 수식어까지 모두 엇비슷했다. 한 마디로 해당 크루즈선과 회사, 그리고 모기업에 대한 찬사 일색이었다. 그렇잖아도 이 회사에 대해서는 최근 해운 불황 속에서도 왜 선박 수주가 몰리느냐는 기사가 잇달았다. 해당 조선사가 이 크루즈 전문 선박회사를 인수한 것은 지난해 하반기. 금융 위기가 본격화되는 와중에 인수한 이 회사와 모기업 경영 상황이 안정화되고 있는지 꼼꼼히 따지는 기사는 거의 없었다. 이 조선사는 한때 유동성 위기를 겪을지 모른다는 풍문에 시달렸던 곳이다.
글로벌 위기 이후 홍보 기사의 전형을 보여준 예가 바로 국내 자동차 업체 관련 기사다. 위기 이후 이 기사들이 다룬 내용이라고는, 우리 자동차 제조업체의 미국 내 시장점유율이 늘고 있고 우리 업체가 출시한 신차에 대한 해외 반응이 뜨겁다는 내용뿐이었다. 어디에도 우리 자동차 업체들이 30%에 가까운 국내외 수요 위축으로 고전한다는 내용이 없었다. 세계 전역에서 벌인 동시다발적인 생산시설 확충과 비주력 업종에 대한 막대한 투자로 앞으로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내용은 더 더욱 없었다.
요즘 이런 기사가 왜 느는지는 누구나 추론할 수 있다. 기업들로서는 유례없는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를 무사히 넘겨야 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 대상에 들어서도 안 된다. 필사적으로 자사에 대한 홍보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업 입장에서야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언론이 기업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쓰기만 한다면 그건 문제다. 기업이 전부 혹은 부분적으로 후원하는 취재 현장을 두고, 일방적으로 해당 기업이 잘나가는 증거로 삼는다면 곤란하다.
우리 경제 저널리즘이 기업 홍보에 좌우된다는 사실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이런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언론인들이 해온 변명도 한결 같았다. 언론의 취약한 재무 및 취재 여건상 해외 취재를 맘대로 할 수도, 기업 주장을 다각적으로 검증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일리가 아예 없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선의의 홍보성 기사가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항변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기업의 홍보가 지나쳐 위기에 빠진 기업을 시장이 오판하도록 한다고 치자. 많은 투자자와 채권자, 심지어 정부 당국에도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여전히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가 진행중인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심지어 일부 시장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기업의 언론 홍보가 지나치면, 해당 기업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는 속설까지 생겨나고 있다. 기사를 거꾸로 읽어야만 진실에 더 접근할 수 있다면 언론의 존재 의의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