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PD의 이메일' 발췌의 위험성



   
 
  ▲ 금태섭 변호사  
 
참여정부 초기, 한창 검찰개혁 논쟁이 불붙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연수원 기수가 낮은 법무부장관이 부임하면서 서열파괴의 바람이 불고 ‘검사와의 대화’라는 초유의 일까지 일어나게 되자 검찰 내부에서도 뭔가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움직임이 생겼다. 대검찰청에 근무하던 중견 검사들은 한자리에 모여서 회의를 했고 그 결과를 간단한 성명서 형식으로 발표하기로 했다. 당시 대검에서 가장 말석이었던 나는 컴퓨터 자판 앞에 앉아서 오고 가는 이야기를 정리해야 했다.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아서 “현재 검찰은 미증유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라고 한 줄 쳐놓고 선배들의 눈치를 봤다.



당시의 복잡한 상황 때문에 한편으로는 당황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격앙되어 있던 분위기는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다. 검찰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외부적 요인이 바뀌었다고 해서 섣불리 움직이다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은 아닌지, 국민들의 신뢰를 받으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나름대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컴퓨터 스크린에 어지럽게 적히던 각양각색의 발언은 갑론을박을 거치면서 점차 정리되어 갔다. 마침내 글의 내용이 가다듬어지고 형식도 어느 정도 갖추었다고 생각되었을 때였다.



공보관을 지낸 경험이 있는 선배가 작성한 글을 프린트하라고 하더니 자를 들고 한 줄 한 줄 가려가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 선배는 전체적으로 별 문제가 없는 글이라고 하더라도 한 부분만 떼어서 읽으면 전혀 다른 느낌을 줄 수 있고, 때때로 언론에서 그런 부분만을 잘라서 보도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과연 전체적으로 무난해 보이던 그 글도 한 줄씩 가려가면서 읽자 여기저기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발표하기 전에 그런 부분을 전부 다시 써야 했다.



어떤 사람의 말이나 글에서 발췌한 일부분을 근거로 그 사람의 의도나 생각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애초에 하려던 말과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진 것으로 보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누구보다도 이런 사실을 잘 안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특정한 사안에 대해서 인터뷰를 요청받고 응했다가 다음날 보도 내용을 보고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분명히 내가 한 말을 인용한 것인데 앞뒤 내용을 자르고 나니 처음에 하려던 얘기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내용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인터뷰어가 특정한 결론에 맞추려는 의도로 왜곡을 했다는 생각까지 들어서 기분이 나쁠 때도 있지만 반박을 하기가 쉽지 않다. 앞뒤 맥락에서 보면 보도 취지와 다른 뜻으로 한 말이지만, 어쨌든 그대로 인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히 보면 이런 일은 발언의 진의를 왜곡하는 것이고 사실을 보도해야 하는 기자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검찰에서 MBC PD수첩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작가의 이메일 내용 일부를 공개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그 내용을 그대로 전재하면서 제작진이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프로그램 내용을 왜곡했다고 단정적으로 보도를 했다. 검찰이 이메일을 공개한 근거는 ‘국민에게 이들을 기소하면서 범죄 성립의 주요 요소인 악의 또는 공평성 상실 여부를 판단할 때 중요한 근거자료가 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지만 과연 수백 통의 이메일 중에서 극히 일부를 발췌한 것을 가지고 내심의 의사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외부에 발표할 생각으로 한 말이나 글도 한 부분만 놓고 볼 때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가 있는데 사적으로 쓴 메일의 일부분을 공개하면서 범죄성립의 판단 근거가 된다고 한다면 공개를 당하는 쪽에서도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다.



별생각 없이 하루에도 여러 통씩 쓰는 메일의 한줄 한줄을 잘라놓고 봤을 때 선입견이나 편견이 있다고 오해받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시사프로그램이 사실을 왜곡했다고 비판하는 기사를 쓰면서 그 근거로 발췌된 이메일 내용을 드는 것은 도저히 합리적인 보도라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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