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추천작]주성치 주연 <월광보합><선리기연>
김귀수 | 입력
2001.01.04 12:11:14
원고 청탁을 받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내가 도대체 남들에게 추천할 만한 무엇을 알고나 있을지. 더구나 이제 막 수습을 뗀 햇병아리 기자가 선배들에게 ‘이런 게 좋습디다’하고 말 한다는 게 두렵기도 하고.
지난 6개월의 수습기간 동안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게 있다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거였다. 매니아는 아니지만 하루에 다섯 편의 비디오를 소화하기도 할 정도로 영화보기를 즐겨했던 나로서는 고문(?)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그런 나에게 여기저기 치이고 취재가 안돼 힘들 때마다 생각나는 영화가 있었다.
비웃음을 각오하고 말하자면 주성치라는 홍콩배우가 주연한 서유기 시리즈 ‘월광보합’(사진), ‘선리기연’이란 영화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홍콩영화, 게다가 주성치 영화라니’하며 실소하실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주성치에겐 주성치만의 매력이 있다. 그의 영화를 한 편이라도 본다면 단박에 편이 갈린다. 혹자는 세상엔 주성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지 않는 사람 두 부류가 있다고 말할 정도다.
그의 영화는 유치찬란함의 극치다. 말도 안 되는 상황설정에 극도로 과장된 표정연기가 ‘주성치표’ 영화의 특징이다. 거기에다가 가끔 비장하기까지 하다. 한마디로 주성치의 영화는 필설로는 표현이 불가능하다. 그냥 봐야 된다. 하지만 그는 빛나는 유희 정신을 가지고 있다. 자신을 갈 수 있는 데까지 망가뜨리며 관객에게 서비스한다. 서유기 시리즈는 그의 여타 영화처럼 패러디 작품이다. 패러디 대상은 왕가위의 동사서독. 음악이나 대사를 그대로 차용한 부분이 많다. 난 이 시리즈를 감히 그의 대표작이라고 말하며 ‘강추’한다.
땀이 속옷사이로 비질거리며 새어나오는 한여름에 수습기간 중 새벽 이슬이 내리는 시간에 서대문 경찰서 기자실에 누워 잠을 청할 때 가끔 주성치의 영화를 생각하며 혼자 히죽거린 적이 있다.
앞으로 기자로서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 얼마나 험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주성치가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느 상황에서도 웃음 잃지 않는 여유로운 기자가 되겠다는 섣부른 다짐을 해본다.
김귀수 세계일보 사회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