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이사' 자리는 전리품이 아니다
편집위원회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9.07.07 10:16:35
지난해 7월, 부산의 한 대학이 겸직 규정을 위반했다며 교수를 징계한 일이 있었다. 교수 본인과 학교 입장에서야 작은 일이 아니었겠지만, 그 여파가 커질 거라고 예측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 교수의 징계로 결국 한국의 매체 영향력 1위 KBS의 사장이 바뀌었고, 국민들이 가장 많이 보는 TV 뉴스의 논조에 큰 변화가 생기고 말았다. 정부가 그토록 못마땅해하던 ‘미디어포커스’. ‘시사투나잇’ 프로그램은 개편됐다.
브라질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른바 ‘나비효과’가 한국의 언론계에도 일어난 것인가. KBS 이사였던 동의대 신태섭 교수에게 일어난 일 이야기인데 ‘나비효과’는 우연의 산물이지만, 이 사건은 치밀한 각본에 의한 것이니 큰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정연주 KBS 사장이 퇴진 압박을 받으면서도 버티고 있던 당시의 정황을 살펴보자. KBS 이사진 11명 중 입장을 유보한 1명을 제외하고 여야 5대 5의 팽팽한 균형이 이뤄지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동의대가 야당 성향의 신태섭 전 이사의 교수직을 박탈하자 방통위는 이를 빌미로 그의 KBS 이사직을 해임하고 한나라당 성향의 강성철 부산대 교수를 보궐이사로 추천하면서 5대 5의 균형은 6대 4로 기울고 말았다. 결국 KBS 이사회는 정연주 사장의 해임을 제청했다.
정부가 감사원 특감까지 동원해 KBS 사장의 퇴진을 압박했지만 여의치 않았는데, 이사회를 통한 해임 카드로 이 문제를 해결했으니, 이 같은 교묘한 해법의 기안자는 틀림없이 청와대의 눈에 들었을 게다. 이사회를 통한 공영방송의 경영진 교체 카드가 KBS뿐 아니라 MBC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청와대가 모를 리 없으니 말이다.
방통위가 다음달 MBC 최대 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개편에 착수한 것을 우리가 지켜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미 방통위는 9명의 방문진 이사진 구성에 있어 MBC노사 추천 몫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방통위의 이 같은 입장은 최근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노골적인 MBC 경영진 사퇴 요구와 맞물려 있다는 해석을 낳고 있다.
MBC뿐 아니라 8월 말에는 KBS 이사 11명의 임기도 끝나고, 9월에는 EBS의 사장과 이사 9명, 감사의 임기가 만료된다. 30개가 넘는 자리가 생기니 큰 장이 선 셈이다. 방통위가 공개모집을 하겠다고 공표했지만, 벌써부터 친정부 인사들의 하마평이 오르내리면서 공모가 요식행위에 불과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던 언론인 출신들은 다 뛰고 있다는 얘기도 파다하다.
MBC 방문진 이사진 구성을 시작으로 향후 KBS와 EBS 이사진 구성의 결과는 이명박 정부가 공영방송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가 될 것이다. 챙겨줄 사람에게 자리를 챙겨주고 정치권이 서로 자리를 나눠먹는 자리여선 안 될 것이다. 공영방송은 정부의 것이 아니라 국민의 것이고, 따라서 공영방송에 대한 철학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각계각층에서 골고루 등용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