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보도수뇌부 '방귀뀌고 성내는 꼴'

속담에는 세상살이의 이치가 오롯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속담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자신의 잘못을 덮기 위해 오히려 성을 내는 어이없는 장면을 삶 속에서 종종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속담은 해학적인 표현으로 인해 말하는 맛을 살려 주는 반면 상황의 심각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다. 현실에서 이런 일을 당하면 너무나 고약하기 때문이다. 방귀 뀐 놈이 성을 내기 시작하면 상식이나 염치, 논리는 다 사라진다. 그저 힘을 앞세운 대결만 남는다.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회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몰상식한 일을 우리는 그 어느 부문보다 정의로워야 할 언론계에서 목도하고 있다.

KBS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방송의 문제점과 관련해 신임투표를 주도한 기자들을 징계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어이없음의 극치라 아니할 수 없다. 당시 취재현장에서 KBS 기자들이 겪어야 했던 수모를 보도본부의 수뇌부들은 모르는가, 아니면 외면하는가.

당시 KBS의 보도 내용이나 논조에 대해 거세게 항의하는 많은 시민들 때문에 KBS 중계차가 이리저리 쫓겨 다녀야 했다. KBS 기자가 멱살을 잡히는 등 위협을 받는 일도 있었다. 심지어 요즘 KBS를 ‘김 비서’라고 부른다고 한다. 정권의 비서 노릇을 충실히 한다는 비아냥거림일 것이다.

현장에서 사회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껴야 하는 젊은 기자들에게 더 할 수 없는 자괴감을 주는 일들이다. 결국 참다 못한 기자들이 불신임 투표에까지 나선 것이다.

따라서 보도본부 수뇌부가 상식과 순리대로 문제를 풀려면 진심 어린 사과를 통해 땅에 떨어진 기자들의 사기를 추스르고 개선책 마련에 나서 분위기를 일신해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후배들의 뜻을 수용해 깨끗이 물러나야 옳다. 그런데 KBS 보도본부 수뇌부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성을 냄으로써’ 상황을 모면하겠다는 것이다.

KBS는 이번에 기자들을 징계하는 이유로 품위유지 의무 위반과 성실의무 위반을 들고 있다. 잘못된 취재 지시와 편집으로 KBS 뉴스의 위상과 영향력에 해악을 끼치는 일보다 더 나쁜 품위유지와 성실 의무 위반이 있는가.

이에 대해 분연히 문제 제기를 하고 시청자들에게 진정 사랑받는 뉴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데 대해 오히려 품위유지와 성실 의무 위반을 운운하는 처사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징계는 보도본부 수뇌부 스스로에게 내려야 마땅하다.

이미 KBS 보도본부 기자들은 기수별로 이번 징계에 대한 철회 요구와 항의성명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신임 KBS 기자협회장은 진상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상식에 따라 생각하고 정의를 지고의 가치로 여기도록 훈련받아 온 기자들을 상대로 ‘방귀를 뀌고 성내는’ 방법으로는 절대 일을 무마할 수 없다.

상황이 더욱 악화되기 전에 KBS 보도본부 수뇌부들은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기 바란다. 그리고 정도와 순리대로 해결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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