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여, 경제지표에 매몰되지 말라


   
 
  ▲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외환위기 전야의 실수부터 고백해야겠다. 1997년 봄 각종 경제지표는 최악의 상황을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당시 ‘시사저널’ 경제팀장이었던 나는 머지않아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내용의 특집을 기획했다. 그런데 여름이 지나면서 상황이 묘하게 돌아갔다. 경기 회복은 고사하고 외환위기의 징후만 뚜렷해졌다. 물론 외환위기는 워낙 비정상적인 상황이기는 했다. 그래도 독자들을 오도한 데 대한 자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해를 넘겨 외환위기가 현실화되자 도저히 더는 스스로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해당 특집 기사의 ‘결과적 오보’에 대해 독자들에게 사과하는 사고(社告)를 게재해야 했다.

경기 판단의 오판에 대해 매번 사과해야 한다면 우리 언론들은 꽤 자주 사고를 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실수가 잦다. 당장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만 해도 그렇다. 위기가 닥치기 전에는 낙관적 전망이 주를 이뤘다. 위기가 본격화하자 이번에는 비관적 기사가 넘쳐났다. 분기별로 위기설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냉온탕식 보도라는 비판이 나오는 게 당연할 지경이었다.

왜 그럴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 기자들이 지표, 그것도 자신의 출입처가 제공하는 경제지표에 지나치게 매몰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자의 소속 부서나 담당 분야에 따른 의사소통 단절도 한몫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출입 기자는 유통 담당 기자와 기사에 대해 상의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한 신문에 정반대 논조의 분석 기사가 실리기까지 한다.

통계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경제지표라는 통계는 그 정의나 작성방법상 더욱 한계가 크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실업률이다. 실업률은 일반적인 말의 의미와 달리 단순히 일자리를 못 구한 사람의 비율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취업 의사가 있는 15세 이상의 경제활동인구 중 일주일 내내 한 시간도 일하지 않은 사람의 비율이다. 이 기준이 국제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 응답자들은 일과 관련해 구미와 다른 태도를 보인다. 체면을 중시하는 탓에 구직 활동을 유예 중이라고 답하거나 가장의 농업이나 자영업을 거들고 있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의 실업률은 한 마디로 구멍이 너무 넓은 그물이다.

이런 지표 자체에 큰 의미를 둬선 안 된다. 그보다는 실업률 추이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한다. 또 신규 고용자 수 같은 보완적 지표와 함께 활용해야 한다. 아니면 아예 유사실업률을 개발해 활용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는 구직단념자와 최소 근로자를 포함해 지표 작성 시 빠지지만, 사회 통념상 실업자로 분류될 수 있는 이들을 포함한 지표다.

소비자물가지수도 마찬가지다. 중산층과 서민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생활물가와는 터무니없이 동떨어져 있다. 이런 지표들을 보완하는 설명이나 추가 분석 없이 그대로 내보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것도 해당 부처의 해석을 그대로 송고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 해석에는 그들의 이해가 걸려 있다.

금융 위기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경기 회복의 전주곡으로 해석됐던 지표 가운데 백화점 판매액이라는 게 있다. 백화점 판매액은 꾸준히 늘어 내수 회복의 근거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지표는 중상위 계층 이상의 소비 여력을 보여주는 지표에 불과했다. 비슷한 시기에 택시기사 수입액이나 재래시장 판매액을 경기 판단의 근거로 썼다면 상황은 정반대가 됐을 것이다. 물론 정부 부처는 이런 통계를 작성해 발표하지 않는다.

경제지표는 불경기 때 중산층과 서민이 겪는 고통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우리 언론들은 이를 양극화의 결과라거나 통상적인 우는 소리로 치부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여기에는 특별한 곡절이 있다. 우리의 경우 불황이 닥쳐오면 환율이 뛴다. 그 결과 수입 물가와 생활 물가가 뛴다. 게다가 중산층과 서민의 가처분 소득마저 크게 줄어든다. 말하자면 중산층과 서민은 불황의 이중고에 시달려야 한다.

경제 기자들이 경제지표를 대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경제지표를 주기적인 틀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그간 나빴으면 곧 좋아지고 죽 좋았으면 이내 나빠질 것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외환위기가 닥쳐오기 직전 낙관론을 폈던 것 역시 이런 함정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의 심리를 포함해 경제 현장에서 맥을 짚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부정적 기사를 쓰라거나 상술 차원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를 전파하는 사람들을 중시하라는 뜻은 아니다. 조심스럽게 판단하고 신중하게 전하라는 것이다. 불확실한 저성장기의 경제적 진실은 일상적 경제지표나 소수의 부정적 예언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경제 현장 속에서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보통 사람들의 아우성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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