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범죄' 와 '조그만 교외'
금태섭 변호사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9.07.22 15: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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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태섭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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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했을 뿐 투기를 한 적은 없다.” 현 정부 초대 환경부 장관 내정자가 자신을 둘러싼 절대농지 매입 의혹을 해명하려고 한 말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한 말인지 필부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원래는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기 위한 의도로 한 말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 해명이 원래의 의도와는 완전히 반대의 효과를 가져 온 것도 분명하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문제에 대하여 당사자, 혹은 주위의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애초에 뜻한 것과는 전혀 다른 파장을 불러오는 경우는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보는 일이다. 때때로 도저히 뇌리에서 지우기 어려운 촌철살인의 표현을 구사해서 사태를 한층 악화시키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가만히 두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괜히 변명하다가 이목을 집중시키는 경우도 있고, 충분히 이해할 만한 사정이 있음에도 스스로 먼저 나서서 적반하장이란 말을 듣는 경우도 있다.
몇 달 전 있었던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생계형 범죄 발언도 그 중 하나이다. 이 발언은 첫째 노무현 전 대통령이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듯한 인상을 줌으로써 처음부터 애초의 의도와는 반대의 효과가 예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도의적 책임은 있을지 몰라도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는데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전임 홍보수석이 ‘범죄’라는 단어를 먼저 쓰고 나온 것이다.
‘생계형’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더욱 더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이 당시 받고 있던 혐의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전두환, 노태우 등 전임자들의 수뢰 액수와는 비교할 수 없이 적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은 가만히 있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고 노 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 전 수석은 그 당연한 사실을 먼저 들고 나옴으로써 변론에 쓰일 수 있는 중요한 카드 한 장을 스스로 날려버린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 번 들으면 도저히 뇌리에서 지울 수 없는 ‘생계형 범죄’라는 유행어를 탄생시켜 자신이 보호하고자 했던 사람의 입장을 오히려 희화화시킨 셈이 됐다.
최근에는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가 ‘조그만 교외’라는 어법에도 맞지 않는 말을 구사해서 많은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사실 호텔에서 결혼식을 하는 것 자체는 불법행위도 아니고 개인의 선택에 속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특급 호텔 예식장을 ‘조그만 교외’라고 말하는 순간 그러한 항변을 할 자격은 사라지고 만다. 스스로의 행동에 자신이 없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소위 사회지도층이라고 할 만한 인사들이 어처구니없는 말실수를 하는 것을 보면서 혹자는 그들의 마음가짐이나 생각이 중요하지, 표현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지적을 한다. 괜한 말꼬리 잡기이고 사안의 본질을 흐린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땅 투기를 한 것이 잘못이지, 엉뚱한 변명을 한 것이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렇게만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에는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묻어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토록 특이한 ‘어록’이 계속 생겨나는 것은 어찌보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하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인 논란이 되는 사건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자리에서, 혹은 국민의 대표로부터 검증을 받는 청문회에서 자기 입장만을 생각하는 말을 하는 것은 그 말을 들어야 하는 국민들을 존중하는 사람의 행동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전현직 고위 공직자로부터 ‘생계형 범죄’나 ‘조그만 교외’라는 말을 듣는 것은 그들의 주장이 옳은지, 틀린지 따지기 전에 실망스럽고 속이 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