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잘 쓰면 사회 목탁··· 잘못 쓰면 해악"

기자협회보 독재치하서 정론 '경의' 표시하기도
김대중 전 대통령 99년 본보 지령 1천호 인터뷰



   
 
  ▲ 기자협회보 지령 1000호 인터뷰 지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하지만 정부 등 외부의 강제가 아닌 언론 스스로 이뤄낼 과제라는 일관된 견해를 유지했다.


1999년 5월10일 기자협회보 지령 1000호 기념 특별인터뷰에는 김 대통령의 이런 언론관이 진솔하게 담겨있다. 서면 인터뷰로 진행됐지만, 김 대통령은 비서진이 작성한 초안을 본 뒤 비서진들을 불러 일일이 자신의 생각을 직접 구술했다. 20여 문항에 달하는 질문에 오랜 시간을 소요한 의미 있는 인터뷰였다.


김 대통령은 이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했다. “언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정한 보도이다. 공정한 보도는 사실에 대해 중립적 입장에서 취재, 비판하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언론이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갖고 공정보도를 위장하면서 편파보도를 하는 것이다. 진실에 대한 보도와 소신에 대한 비평은 엄격히 구별돼야 한다.”


김 대통령은 이날 “정치권력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언론은 공정한 기준을 갖고 권력을 감시하며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며 “권력이 언론을 장악하려고 해서도 안되고, 상호 존중하고 감시하는 그런 관계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언론개혁은 정부가 주도해서는 안된다”며 “정부가 언론개혁을 주도할 경우 그 순수성이 훼손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나라의 언론인들이 과거 독재정권 치하에서 과연 할 일을 다 했는가, 그리고 지금 언론자유가 보장되니까 절제를 버리고 함부로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지 않는가 하는 점에 대해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역감정 조장 보도에도 단호했다. 그는 “망국적 지역감정을 극복하는 데 앞장서야 할 언론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오히려 이를 조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우회적으로 일부 신문들을 비판했다.


김 대통령은 훌륭한 언론인으로 홍종인, 송건호 선생을 꼽으며 대마도 분쟁을 취재하다 숨진 최병우 당시 한국일보 기자를 ‘영원한 기자’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워싱턴 포스트의 세릭 해리슨의 취재 열정에 언제나 감복한다고도 했다.


“언론인은 어떤 경우에도 진실을 추구한다는 언론인으로서의 자세와 양심, 지조 그리고 사물을 보는 일관된 잣대를 가져야 하고, 그런 분들이 언론인의 사표가 되어야 한다.”


김 대통령은 “언론은 양날의 칼과 같다”며 “잘 쓰면 사회의 목탁이 되고, 잘못 쓰면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뉴스 애호가이기도 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모든 신문을 읽고 신문 기사를 표시했다가 나중에 읽거나, 비서에게 읽게 한다는 습관을 공개하기도 했다. 뉴스전문 채널인 YTN을 항상 켜놓고 틈날 때마다 본다고도 했다.


김 대통령은 ‘기자가 됐다면 어떤 기사를 쓰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만약 내가 기자라면 문화부 학술담당 기자를 선택하겠다”며 “책을 많이 읽을 수 있고 지식인들의 논쟁을 경청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김 대통령은 기자협회보에 대해서도 “나는 기자협회보가 과거 독재 하에서 두려움을 무릅쓰고 정론을 펴온 그 용기에 항상 경의를 표해 왔다”며 “그러한 용기는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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