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협회 창립 45주년을 맞아
편집위원회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9.08.19 15:44:21
기자협회가 창립된 1964년 8월 17일은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가 민간인이 된 다음 비민주 악법인 ‘언론윤리위원회법’을 추진하던 시점이었다. 박정희는 시민들에 대해 “시민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고, 언론에 대해서는 “정부 정책에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정희는 이런 사고방식에 근거해 비판 언론을 옥죄려는 목적으로 ‘윤리위원회법’을 추진했고, 기자협회는 이에 강력한 투쟁을 전개했다.
그로부터 45년이 흐른 오늘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언론자유 억압현상을 보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 비판적인 글을 올린 인사가 연행됐는가 하면, 방송장악에 저항하는 기자들이 해직됐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미디어법의 날치기 통과로 초래된 후폭풍을 목도하고 있다. 우리는 이처럼 절차를 무시하는 국회가 아직도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랄 뿐이다. 미디어법은 이제 헌법재판소의 위헌여부 판단을 기다리고 있고, 그 사이 정치인들은 길거리로 나섰다. 이명박 정권이 추진 중인 미디어법은 “세계적 미디어를 키우려 한다” “자유 경쟁을 유도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이 정책은 현실적으로는 거대 미디어를 형성시켜 결과적으로 비판언론의 고사를 초래할 것이다.
거대 미디어는 기업적 관점에서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루퍼트 머독의 ‘뉴스코프’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미디어 그룹 등 외국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거대 미디어는 그 자체로 매우 보수적이고 정치적이다. 이들 미디어 소유자들은 스스로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실제로 정치에 참여하거나 개입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미디어가 정부와 다른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고 미디어 자체의 논리를 전파하면서 국민에게 친여적 여론 형성을 강요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국내에서 거대 신문과 기업들이 방송을 장악한다면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비판적 방송은 곧 사라질지 모른다. 이명박 정부는 현재 KBS와 YTN을 장악한 데 이어 민영화를 통해 MBC를 장악하려는 속셈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속셈은 최근 구성된 방문진의 면면을 보면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과거의 권위주의 정권이 물러간 다음 민주화가 상당히 진척돼 왔다고 믿었던 많은 시민들은 요즘 ‘과거 회귀’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지구촌의 웃음거리가 됐던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 사이버 논객 박대성에 대한 구속-석방과 박씨의 사이버 망명, 노무현 정권 핵심인사의 ‘언론악법 무효화 투쟁’ 가세, 방문진 이사진의 보수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져진 이런 도전들은 만만치 않다.
현재의 민주주의는 분명히 1987년 이후 진전돼 왔던 한국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역행의 시기’를 사는 우리들은 자사의 문제엔 완전히 눈을 감은 채 살고, 사회를 보도하는 데에는 한 쪽 눈만 뜨고 보도하는 게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퇴행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투사형 기자’가 되지 못할지언정 ‘고민하는 기자’라도 돼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