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대하는 방식
금태섭 변호사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9.08.26 14: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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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태섭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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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에는 선거 유세를 하는 부통령 후보가 참모로부터 기자들을 대할 때의 주의사항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전제 사실을 받아들이지 마십시오”가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어 한 기자가 “○○당의 정·부통령 후보는 외교문제에 관해서는 별다른 경험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족한 외교력을 어떤 식으로 보완하려고 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치자.
여기에 대해서 어떤 해결책이든지 제시하려고 한다면 외교 경험이 없다는 전제 사실을 일단 인정하고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장점을 알려야 하는 후보자의 입장에서 피해야 할 일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식의 질문에는 전제 사실 자체에 대해서 반박을 해야 한다. 자신들이 외교 분야에서도 강하다는 점을 확실히 한 후에 다른 대책을 덧붙여 얘기해야 하는 것이다.
비단 정치판에서만 언론 대응책이 유효한 것은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한 많은 방법이 있다. 최근 한 신문에 보도된 연예인들의 악플 대응법도 그 중 몇 가지를 응용한 것이다. 인터넷에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피하고 싶은 악플이 퍼져갈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방법, 확실하게 인정을 하고 사과하는 방법, 무대응 전법 등 다양한 전략이 있고, 그에 따른 장단점이 있다.
기사에서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상황에 가장 적절하고 효율적인 전략을 택하는 통찰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기사에서 악플을 ‘기사’로 대체하면 그대로 언론 보도에 대한 대응 요령이 된다.
언론에 대하여 어떤 식으로든 대응하는 것을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공공기관의 공보관이나 웬만한 규모의 단체에서는 다 두고 있는 홍보담당자의 업무가 있었던 일을 그대로 기자들에게 알리는 것만은 아니다. 이슈가 되는 문제를 보는 하나의 시각을 제시하는 것도 그들이 하는 중요한 일이다. 뉴스를 ‘스핀(Spin)’하는 것이 반드시 왜곡을 한다는 뜻은 아니다. 똑같은 문제라도 해석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당사자들에 의해 제공하는 해석을 감안하면서 최종적인 보도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취재의 대상자도 좋은 기사를 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방식이 유효하고 적절하다고 할 수는 없다. 취재원과 기자들 사이에 불문율로 되어 있는 ‘어떠한 경우에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규칙을 어기는 것은 그야말로 자살행위다.
한 번의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점점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빠지게 만든다. 피할 수 없을 때는 차라리 먼저 인정하고 나가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다. 언론기관에 대한 ‘협조’ 요청을 생각하기 어려운 선진국의 정부도 비판적인 내용의 보도를 미리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해명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이다.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상식에 맞지 않고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을 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몇 달 전 경찰청장이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성매매 단속의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내가 공보관을 끝내고 미국 연수를 준비하면서, 기자들이 술 한 잔 사라고 해서 2차를 갔다”, “모텔에서 기자들에게 방 열쇠를 나눠주며 ‘내가 이 나이에 별일을 다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는 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일이 있다. 여성단체를 비롯한 각계의 반발이 쏟아지자 그는 부적절한 발언이었다고 사과를 하면서도 “술에 취하면 (기자들을 모텔에) 재우곤 했다”, “피곤한 것 같아서…”라는 상식에 맞지 않는 해명을 해서 실소를 자아낸 일이 있다. 물의를 최소화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실수를 저지르고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일이 있다. 어쩔 수 없이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그런 면을 찾아서 보도를 하려는 것은 언론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런 순간에 솔직하면서도 재치 있는 대응을 보고 싶은 것은 지나친 기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