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민주적 양심을 믿는다

지난 7월22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전 세계인에게 웃음거리가 됐던 미디어관련법 통과사건. 10일 헌법재판소에서 공개변론이 있었다.

이번 사건의 청구인인 야당 측의 대리인인 박재승 변호사는 “다수당이 국민을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법안을 밀어붙였다”면서 “이번 사태는 오래 전의 사사오입 개헌 때보다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고 날치기 입법과정을 공격했다. 이에 대해 국회의장 측의 대리인인 강훈 변호사는 “의원 과반수가 출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의결이 이뤄지지 못했다”면서 “야당 측의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 논리는 맞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헌재의 입장은 무엇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논란, 행정수도 이전 논란을 떠맡았던 헌재가 이런 사건을 떠맡는 것을 환영할 리 없다. 가뜩이나 정치화돼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헌재 재판관들은 “왜 국회 의원들이 스스로 내려야 할 결정을 우리에게 미루는가” 하고 불평하고 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어느 한쪽은 결정에 불만을 표출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헌재는 오는 29일 다시 공개변론을 가진 다음 미디어법이 시행되는 11월이 되기 전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헌재가 야당측 논리를 수용할 것인지 여당 측 논리를 수용할 것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헌재는 이번 사건이 미디어 산업의 발전이라는 논리로 포장된 공론장 장악의 의도에서 나온 밀어붙이기식 입법임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일부 보도에 의하면 신문재벌의 고위관계자들은 지방신문사나 기업관계자들을 만나 종합방송채널의 컨소시엄에 참가하라고 권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행위가 권유일 수도 있고, 압력일 수도 있다. 신문재벌들은 동시에 방송경력자를 초빙하거나 신입 직원 모집에 나서는 등 방송 진입을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이들 신문재벌이 거대 신문-방송 미디어가 되면 한국의 여론시장은 더욱 친여적 발상, 친여적 생각들만 판을 치게 될 것을 우려한다. 민주주의가 언론의 자유, 다양한 의견의 표출, 비판적 의견의 수용을 허용하는 정치제도임을 감안한다면 이들 미디어 재벌을 키우려는 미디어법은 이에 역행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미국의 언론학자 로버트 먹체즈니는 ‘부자 미디어와 가난뱅이 민주주의’라는 저서를 통해 미디어 회사가 커지면 의견의 다양성이 크게 훼손돼 민주주의가 위험해진다고 말했다.

부자 미디어는 회사 이익의 관점에서 권력에 비판적인 국민의 생각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헌재 재판관들은 이번 사건의 결정을 내리기 전에 미디어 회사가 커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만약 양질의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헌재 재판관들은 미디어법의 보완을 명해야 한다. 우리는 헌법재판소의 민주적 양심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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