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적자 심각성 일깨우는 언론이 필요하다


   
 
  ▲ 최진기 경제연구소 대표  
 
대책없는 감세정책과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재정지출이 빚어낸 대한민국의 재정적자는 점차 그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이 작년의 33%에서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40%에 육박하는 수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숫자로 나타나는 재정적자는 그 공포감이 점차 커지는 중이다.

하지만 어떤 언론도 이러한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고 있지 않다. 피상적일 뿐이다.
정부당국은 항상 우리의 재정적자는 미국이나 일본, 유럽의 선진국보다 훨씬 상황이 양호하다고 말한다. 듣기에 따라 매우 그럴싸하게 보인다. 문제의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최악의 일본이 2백%에 육박하고 미국도 70%대에 도달해 있다. 독일이나 영국 등 유럽의 선진국들도 복지지출이 많다 보니 60~70%대에 걸쳐 있다. 이 와중에 36% 수준에 있는 대한민국이 재정적자 문제로 IMF에서 지적을 받는 것은 일견 억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왜 우리보다 심각한 일본이나 미국에 대해서는 그렇게 무덤덤하냐는 항변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항변에는 가장 중요한 반론 한 가지가 기다리고 있다. 정말 선진국들은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하고, 한국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는 말이 정말이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상황이 좋은 것이 아니다. 설사 재정적자 비율이 낮다고 해서 그것이 곧 우리의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란 말이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은 우리와 같은 신흥강국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수백년간 자본축적의 기간을 거쳐왔다. 그들이 보유한 금융자산의 양은 자산축적의 기간이 일천한 대한민국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미국의 금융자산은 56조 달러, 서유럽은 43조 달러, 일본은 19조 달러에 이른다. 비록 GDP 대비 재정적자의 비중은 우리나라에 비해 심각하게 높은 수준이지만, 그 나라들이 보유하고 있는 총금융자산에 비한다면 이 재정적자는 오히려 쉽게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모아둔 것이 없는 나라이다. 이제 겨우 1조5천억 달러의 금융자산을 모아둔 상태이다. 다만 부동산 자산은 무려 5조 달러대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그간 돈을 모아두는 족족 전부 부동산에만 쌓아둘 생각을 했지, 건전한 투자와 저축을 통해 부를 재생산하는 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나라에서 재정적자 수준이 GDP의 40%대에 육박한다는 것이 왜 문제가 아니겠는가? 미국의 재정적자가 GDP의 80% 수준이라는 것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말과 같지만, 한국이라면 ‘이미 끝이다’라는 말과 동일하다. 오래된 부자인 미국에 비해 이제 조금 먹고살게 된 우리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한 국가의 재정이 파탄나면 정부는 식물정부로 변해 버린다. 정부는 국가에 어떤 위기상황이 닥치더라도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가 없으며, 어떤 장기적인 비전도 제시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그저 빚의 늪에 빠져 이자 갚기에만 허덕이는 것이 전부이다. 과거 세대가 무책임하게 질러 놓은 책임을 수세대에 걸쳐 고통스러워 해야만 한다.

금융위기 상황에서 철저하게 무력했던 일본의 경우를 보면 이 당연한 사실이 쉽게 납득된다. 결국 일본은 분노한 시민들에 의해 역사적인 정권교체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인들도 새로 들어선 민주당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으리라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다. 이미 빚의 늪에 빠져 버린 일본 정부에는 옵션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이번 금융위기 와중에 강력한 부양책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난 10여 년간 이룩해 온 재정건전성의 힘이었다. 그러나 이는 결코 무한정한 힘이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언론에서 이러한 문제를 짚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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