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국가의 품위를 세워달라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10조. 지난 1988년 헌법재판소가 설립된 이유다. 헌법재판소는 존립 근거인 국민의 존엄권과 행복추구권 등 신성불가침 권리 보장을 위해 지난 20여 년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판결을 해왔다. 이런 노력 덕분에 호주제 폐지와 대통령 탄핵심판 등의 굵직굵직한 결정으로 대한민국의 품격을 한 차원 높였다.

특히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 영화 검열, 신문법, 양심적 병역거부 등 언론과 정신적 자유에 대한 획기적인 여러 결정을 내려왔다.

헌재는 29일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또 하나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지난 7월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빚어진 방송법 등 언론 관련 4개 법안 처리의 불법성을 따지는 권한쟁의심판이다. 지난 2004년 대통령 탄핵사건에 이어 국민들의 눈과 귀가 다시 헌재의 재판 결과에 쏠리고 있다. 민주당이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에 대해 한나라당 피청구인 측은 민주당의 청구 자격부터 문제 삼고 나왔다고 한다. 이와 함께 방송법 표결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는지 여부와 대리투표의 불가피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한다.

석달이 넘은 재판 과정에서 청구인과 피청구인 측은 서로 주장과 증거를 제시했고 헌재는 이에 대한 현장 자료 분석과 자료의 검토를 했다. 이제 헌재의 판단만이 남았다. 헌재가 판단의 근거로 가장 유념해야 할 것은 헌재의 존재 이유인 헌법 10조, 국민의 신성불가침 기본권 보장 규정이다.

지난 7월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빚어진 국회법과 헌법 정신의 유린이 국민의 존엄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면 된다. 재투표와 대리투표가 국민의 기본권을 훼손했는지 여부를 신중히 따지면 된다. 또 이 국민의 기본권을 국가가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를 판단하면 된다.

일각의 시각처럼 “미디어법을 강행 처리해 지상파 방송사들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정권의 시도라는 주장, 야당의 정치공세일 뿐 적법한 처리다”라는 정치적 주장들은 모두 배제하자. 치열하게 기본권 존중의 헌법정신으로 판단하면 된다.

권한쟁의 심판은 위헌 심판을 다루는 사안과 달리 헌법 재판관 5명의 동의만 있으면 국회 표결을 무효화하는 인용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 인용 결정이 이뤄지면 재투표와 대리투표로 법안의 효력이 의문시되는 방송법 등 4개 법안에 대한 더욱 심도 높은 논의를 통해 여야 합의에 의한 언론법이 만들어질 개연성도 있다.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지 않는 법안이 합의 없이 다수라는 국회 정족수 규정을 내세워 날치기 처리됨으로써 대한민국 민주주의 60년 역사는 부끄러워졌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헌법정신에 충실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국가의 품위를 세워주길 바란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