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산업부 기자들이여! 언론 플레이에 동원되지 마라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9.11.24 09: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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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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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상장 기업이 엄청난 계약을 성공시킬 거라거나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 단지가 인기를 끌 거라는 식의 기사를 접했다고 치자. 요즘 독자들의 반응은 대개 해당 업체가 언론 플레이를 세게 했구나 하는 것이다. 전처럼 해당 종목이나 단지에 관심을 가져야지 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우리 신문이 그만큼 신뢰를 잃고 있다는 뜻이다. 경제나 산업 지면에 대해 국한해서 말한다면, 특정 기업(인)과의 유착 관계가 도를 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언론 플레이라는 말은 이해 당사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론을 주무른다는 뜻이다. 과거 주로 정치권력과의 관계에서 폭넓게 쓰이던 이 말은 이제 경제와 산업 지면에서 더 횡행하고 있다.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다. 언론의 정파주의로 정치적 언론 플레이가 퇴색한 탓도 크다. 어느 신문의 아무개 기자가 정치 기사를 쓰면, 요즘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만다. 반면 민주화의 진전으로 경제와 산업면에서 여론의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권력과 대중의 관계에서 여론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느냐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삼성과 LG 같은 재벌들은 세종시 이전 문제에 관해서도 여론의 향배를 살펴야 한다. 효성은 점차 악화되는 여론 때문에 하이닉스 인수의 꿈을 접어야 했다. 신문사 상황이 악화된 것도 언론 플레이를 조장하는 면이 있다. 신문사로서든, 기자 개인으로서든 기업(인)의 광고와 보상은 점점 견디기 힘든 유혹이 돼 가고 있다.
언론 플레이는 넘쳐나도 이를 고백하는 기자들은 없다. 그들은 스스로를 완벽하게 합리화할 만큼 영리하다. 자신이 다루는 기사가 정보로서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취재원 일방의 주장도 장기적으로 객관적 사실로 판명날 것으로 여긴다. 나중에 그 주장이 무의미하며, 심지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도 합리화는 계속된다. 기사화할 무렵에는 의미있는 사실이었다고.
아마 언론 플레이에 대한 기자들의 가장 상투적인 변명은 의도나 동기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언론 플레이가 됐을지는 몰라도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실은 의도나 동기는 언론 플레이의 핵심 구성요소는 아니다. 고도의 언론 플레이는 속보를 좇는 기자들의 속성을 간접적으로 활용해 이뤄지기도 한다. 이때 기자의 심중은 무의미해진다. 언론 플레이에서는 주장의 형식도 무관하다. 많은 기자들은 취재원에게 식사나 술을 대접받으며 사적으로 제공받은 정보가 아니라는 이유로 언론 플레이에 놀아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으리으리한 기자회견장에서도 언론 플레이는 다반사로 이뤄진다. 2000년대 초반 벤처 붐 당시 얼마나 많은 언론 플레이가 고급 호텔 기자 회견장에서 벌어졌나.
정작 가장 중요한 언론 플레이의 구성 요소는 다른 데 있다. 이해 당사자 가운데 어느 한쪽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 주장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이다. 사실로 둔갑한 주장이 그 당사자의 이해에 철저히 봉사하는 경우다. 양 당사자 혹은 소수의 이해가 제로섬(Zero-sum)으로 엇갈리는 인수합병(M&A)이나 독과점 시장의 마케팅 상황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최근 많은 국민은행 출입 기자들이 은행장의 외환은행 인수 희망 발언을 전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외환은행 인수를 전제로 한 금융계 지각 변동 시나리오를 분석한 신문도 많았다. 그러나 정작 매각을 추진할 론스타나 매각대상인 외환은행 임직원들의 입장을 담은 기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 대한 경제나 산업부 기자들의 핑계도 한결같다. 취재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요하거나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늘 입을 여는 선진국과 취재환경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특히 경제계와 산업계는 입을 열수록 손해라는 편견이 강하다. 반면 미국에서는 공식 입장을 분명히 밝혀두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미국의 한 기업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휴가 중이었던 그는 자동응답기에 자신의 입장을 녹음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내 응답기에 같은 사안으로 네 번이나 통화 기록을 남긴 외신 기자도 경험한 적이 있다. 언제든 입을 여는 취재원 역시 집요한 기자들이 만드는 문화다.
경제와 산업부 기자들이여, 언론 플레이에 동원되지 마라. 알고 참여하는 것만큼 모르고 당하는 것도 나쁘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해 당사자의 입장을 들어라. 단지 소송을 면하려는 책략으로서가 아니라 진정 궁금하다는 입장에서 경청하라. 그래야만 자신이 돈의 도구로 쓰였다는 자괴감을 면할 수 있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KBS 1라디오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