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판결문 비평을 보면서
금태섭 변호사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9.12.01 15:2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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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태섭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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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선고된 판결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법원은 작년 12월 여당의 한·미 FTA 직권상정 움직임에 반발해 국회의사당 로텐더홀에서 연좌농성을 하다가 퇴거불응 혐의로 기소된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에 대해서 공소를 기각했다. 동일 사건의 피의자들 중 일부만 기소하고 나머지는 불기소한 것은 검사의 공소권 남용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이 판결에 대해서 일부 매체에서는 ‘황당한 공소기각 판결’, ‘법관의 판결에 이념 개입을 우려한다’, ‘어느 판사의 개인적 정치 성향과 재판’이라는 제하의 비판적인 기사를 실었다.
국민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원의 판결에 대해서 언론이 관심을 갖고 비판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 법원이 현재까지 공소권 남용 이론을 근거로 실제로 공소를 기각한 일이 거의 없고, 특히 대법원이 자신과 동일한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불기소된 사람이 있다는 사유만으로는 평등권이 침해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한 일이 있기 때문에 서울남부지방법원의 이번 판결에 대해서는 당연히 반대하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에 대해 논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최근의 언론보도가 이 원칙을 지켰는지는 지극히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판결 비판은 ‘팩트’에 근거해서 논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수의 의견이나 여론을 반영해야 하는 입법, 행정과 달리 사법은 법에 따라 개인의 권리와 의무를 다루는 것이고 증거에 의해서 입증이 될 때만 작동이 가능하다. 이런 특성을 고려할 때 판결에 대한 논평도 증명된 사실에 기초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판결을 선고한 판사가 법원 내의 우리법연구회 회원이라는 사실을 판결 내용과 함께 보도하고 있다. 만일 판사가 특정한 단체의 지시를 따르거나 혹은 영향을 받아 재판을 했다면 당연히 비판을 받아야 한다. 또한 이번 사건의 판결에 우리법연구회가 관여했다면 언론이 그러한 내용을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기사 내용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우리법연구회가 재판 과정이나 판결 내용에 영향을 미쳤다는 구체적인 근거는 전혀 없다. 관련이 없는 두 가지 사실을 늘어놓고 추측에 불과한 사실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비판이 논리적 오류라는 것은 기사를 작성한 기자 스스로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어떤 기사를 작성한 기자가 특정 언론사에 몸담고 있다거나 특정 학교 출신이라거나 혹은 특정 단체의 회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기사가 외부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비난한다면 당연히 반발을 살 것이다. 관련성을 입증할 논리적 고리가 없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단순히 기사 내용을 비판하는 논평 말미에 그 기사를 쓴 기자는 이러저러한 단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내용을 슬쩍 끼워 넣는다면 이미 그러한 비판은 논평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이번 판결에 대한 보도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오류 때문이다.
사법부 구성원이 정치적 입장에 따라 사건에 대해 편향적 시각을 가지거나 판결 내용에 영향을 받는다면 그러한 일을 비판해야 하는 것은 언론 본연의 임무다. 하지만 그러한 임무를 제대로 하려면 실제로 판사가 그러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몇 가지 사실을 늘어놓고 근거 없는 추측을 유도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 판결과 달리 같은 사안에서 유죄를 선고한 판사도 우리법연구회 회원이라고 보도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번 판결을 비난한 기사가 오히려 편향된 시각에 근거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입증할 수 없는 추측에 따라 법원의 판결에 시비를 건 기사에 대해서는 언론사 스스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