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시대의 경제부 기자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09.12.22 09:33:37
요즘 주식 투자자들은 곤하게 새벽잠을 청할 수 없는 처지다. 미국 시장 상황을 보고 그날의 투자 전략에 참조하기 위해서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세계 증시나 경제가 서로 밀접하게 연계돼 있어서다. 바로 (금융) 세계화 때문이다.
세계화는 이렇게 거의 모든 직업과 직종의 일을 고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경제부 기자만은 여전히 세계화의 영향을 덜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세계화의 영향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외진 출입처 책상 앞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이 변화무쌍한 세계 시장을 더 잘 이해할 수는 없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접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경제 기사에 세계화의 영향을 전부 반영할 수는 없다.
당장 이런 걱정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최근의 경제 기사들이 지나칠 정도로 금융 위기 이후의 상황에 대해 단순하게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에서 전세계가 회복됐다고 보도하다, 두바이 사태 이후 또 불안정하다고 보도하는 식이다. 두바이 사태만 해도 그렇다. 몇 년 전만 해도 두바이 경제 발전 모델을 목 놓아 칭송했던 것이 우리의 경제 저널리즘이 아니던가. 방송을 통해 몇 번 지적했지만, 외국 자본에 의존한 대형 건설 프로젝트 중심의 발전 모델은 근본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세계화 이후 대규모 자금의 기동으로 불안정해진 국제 금융시장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 기인한 실착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미국의 추가 부실이나 여타 지역의 부실이 드러나면 또 한 차례 언론은 춤을 출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외환 위기 전에는 상황을 너무 충격적으로 알렸다. 시기별로 시중의 위기설을 지상중계했다. 반면 위기 후에는 급박한 상황이 완전히 종료된 것처럼 이해하고 있다. 냉온탕식 보도는 시장의 불안정성을 잠재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어떤 입장을 밝히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세계화로 인한 불가피한 금융 불안정성에 대해 차분하게 알리라는 것이다. 1980년대 들어 대규모 자본이 선진국 클럽이라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울타리를 벗어난 이후, 세계적으로는 금융 불안이 끊이질 않았다. 1980년대 초반의 동유럽과 남미의 외채 위기와 90년대 초반의 남미 외환 위기, 그리고 90년대 후반의 동아시아와 러시아 위기가 대표적이다. 이번의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 역시 그 일환이다. 세계화의 속성이 변하지 않는 한, 또 이번 위기의 근본적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쉽사리 걷히지 않을 것이다.
세계화의 속성을 쉽게 이해시키려는 마음에서, 세계화에 관한 비유 하나를 찾아냈다. 세계화는 다이애나 왕세자비(妃)라는 정의다. 1998년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죽음을 떠올려 보자. 당시 사고 차량 운전자의 국적은 벨기에, 그가 몬 차량은 독일산, 그가 마신 술은 스카치위스키, 즉 영국 국적이다. 그 차량을 뒤따르던 파파라치는 이탈리아 출신, 그가 운전한 오토바이는 일본제였다. 이 사실이 상징하는 것은 간단하다. 세계화는 세계의 돈과 자본이 가장 효과적으로 쓰일 곳을 찾아 재배치되는 과정이다. 이 점은 경제의 효율성을 높여준다. 바로 세계화의 긍정적 측면이다.
반면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고 소식이 세계에 퍼져나간 과정을 생각해보자. 더 빨리, 더 충격적으로 전해졌다. 그보다 10년 전이었으면 신문 한 구석의 박스 기사로 처리됐을 뉴스가 어마어마한 뉴스로 발전했다. 결국 지상파 텔레비전은 장례식을 생중계 했다. 이 점이 바로 금융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이다. 일단 금융시장에 변고가 생기면 훨씬 빨리, 더 충격적으로 확산된다. 이것은 세계화로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따르는 불가피한 대가다.
오늘날 거의 모든 종류의 경제 기사에는 해당 사안에 대해 세계화가 미칠 영향이 들어 있어야 한다. 사회 기사와 달리 취재원에게 들은 이야기뿐만 아니라 시장의 반응을 반영하거나 예측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담기 위해 경제부 기자는 전보다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더 많이 공부하고, 귀 기울여야 한다. 그건 참으로 고단한 일이지만 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김방희 생활경제연구소장·KBS 1라디오 '성공예감'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