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해 언론계에는 무슨 일이
62년 필화 사건·74년 자유언론실천선언·86년 보도지침 폭로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 입력
2009.12.30 15: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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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4년 언론자유수호운동은 선언을 뛰어넘어 사실보도쟁취 등 실천적 노력이 뒤따른 운동이었다. 사진은 10·24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고 있는 동아일보 기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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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띠 기자들이 태어났던 1962년, 74년, 86년에 언론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어두운 일이 많았던 시기였다.
1962년은 5·16 쿠데타로 등장한 군사 정권의 통치가 한창일 때여서 필화사건이 잇달았다. 동아일보가 7월 ‘국민투표는 만능이 아니다’라는 사설에서 군부가 추진 중인 새 헌법을 국민투표에 회부하는 것을 반대하자 해당 논설위원과 주필이 구속됐다. 한국일보가 11월 당시 군사혁명 세력이 영국 노동당과 비슷한 정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하자 장기영 사장을 비롯해 편집국장, 정치부장, 기사 작성 기자가 모두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한국일보는 12월2일부터 3일 동안 자진 휴간했으며 장 사장은 사장직에서 일시적으로 물러났다.
1974년은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이 있던 해였다. 동아일보 기자 1백80명은 10월24일 편집국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언론의 자유로운 활동과 독립을 촉구한 이 선언은 조선일보, 한국일보 등으로 번져나갔다. 정권의 탄압도 이어졌다. 이것이 바로 ‘동아일보 광고탄압 사건’이었다. 중앙정보부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이 사건으로 12월16일부터 동아일보에 기업체의 광고가 자취를 감추게 됐다.
1986년 가을에는 언론계는 물론 사회 전체에 큰 파장을 부른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보도지침’ 사건이었다. 해직기자들이 주축이 돼 창간된 월간 ‘말’은 김주언 당시 한국일보 기자의 자료를 제공받아 전두환 정권이 문공부 홍보조정실을 통해 각 언론사에 매일 ‘보도지침’을 내려 보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 사건으로 ‘말’의 편집인인 김태홍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사무국장과 신홍범 실행위원, 김 기자가 구속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