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조선일보의 '학생인권조례' 보도


   
 
   
 
후배 중에 어릴 때부터 천재에 가깝다고 생각해온 친구가 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생각하는 방식 자체가 보통 사람과 다른 사람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이 후배는 어려서부터 수학을 잘했고 좋아했다. 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경제적 상황이 일정하지 않아 전학도 많이 다녔는데 적어도 수학만은 한 번도 다른 사람에게 뒤진 적이 없다고 한다. 부모도 수학에 관해서라면 우리나라 공교육과 사교육이 줄 수 있는 모든 혜택을 받게 해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 후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의 한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수학 부문에서 세계적으로 1, 2위를 다투는 대학이다.

그런데 첫 학기를 마쳤을 때 그 후배의 지도교수는 후배에게 경제학을 전공하라는 권유를 했다. 지도교수에 따르면 후배는 성적도 괜찮고 머리도 좋아서 노력하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수학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한국의 교육제도에서 자랐기 때문에 ‘상자 안에서만’ 사고할 수 있어서 기초과학인 수학의 대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학문적 성취를 이루지 못 할 바에야 순수학문을 하는 것보다는 응용과학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그 교수의 논리였다.

나는 후배로부터 이 얘기를 듣고 우리나라의 교육에 대해서 깊은 절망을 느꼈다. 그 후배처럼 천재성은 없어도 나름대로 우리 교육제도에 순응해서 모범생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한 마디도 반박할 수 없는 냉정한 비판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 교육현실을 비판할 때 경쟁에 치중한 나머지 인성교육이나 전인교육에 신경을 쓰지 못 한다는 말을 한다. 커다란 착각이다. 우리의 교육은 공부를 잘하도록 가르치지도 못 한다.

얼마 전 경기도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를 발표하자 언론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중 몇몇 기사를 보고 정말 가슴이 답답해졌다. 한두 가지 예를 보자. 12월 24일자 조선일보 ‘태평로’에서 박은주 엔터테인먼트 부장은 “조례제정 자문위원이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학생인권과는 정반대로 굴러가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 이 말의 이면에는 학생을 둘러싼 교육환경을 ‘보수 대 진보’, ‘우파 대 좌파’ 식으로 도식화하고, 학생을 교사와 학부모로부터 분리해서 자기 아군으로 만들려는 욕망이 꿈틀대고 있다”고 쓰고 있다. “자기들은 공부 열심히 해서 명문고·명문대 나와 놓고는 ‘자율학습? 웃기지 말라고 그래’, ‘교내집회? 니 마음대로 해’…라고 속삭이는 건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라면서 “남의 애를 정치꾼으로 만들 권리, 이용할 권리, 망칠 권리는 없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같은 날 ‘동아논평’에서는 “교사들 역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가지며, 자신의 사상과 양심에 반하는 내용을 교육하도록 강요당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학생들에게 주체사상을 가르쳐도 어쩔 수 없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하고 있다.

과연 이런 기사를 쓰는 분들은 우리의 교육 현실에 정말 자신이 있는 것일까. 자유로운 상상력을 갖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비판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보고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어나갈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서 그런 것이 과연 가능할까. 우리나라 학생들은 아직도 자기의 머리카락 길이나 옷차림조차 마음대로 결정을 못 하고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좋다는 교육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것이 그렇게 부정적이고 ‘정치꾼’을 만드는 일일까. 오히려 부모님과 선생님이 아무리 좋은 의도로 가르침을 주신다고 해도 미래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청소년들이고, 그런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어떤 권리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주위를 보자. 우리의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선행학습이라는 이름으로 고등학교 수학을 배운다. 밤 10시 전에는 학원을 끝내라는 말에도 그럴 수 없다는 얘기가 쏟아져 나온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이런 환경을 제공하면서 ‘공부 열심히 해서 명문고·명문대 나오면 된다’고 생각하면 그만일까.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은 주체사상을 가르쳐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지극히 비논리적인 주장에 아무런 비판을 하지 못 하는 아이들이 되더라도 만족할 수 있을까.

교수의 권유를 받은 후배는 결국 경제학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지금은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순응만을 강요하는 우리 교육의 분위기가 어느 나라의 청소년 못지않게 똑똑한 우리의 아이들을 망치는 데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교육에 관한 논평을 기사로 쓸 때만은 좀더 신중하고 객관적인 접근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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