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신료 인상은 정치적 꼼수

KBS가 수신료를 인상할 모양이다. 김인규 KBS 사장에 이어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수신료 인상의 뜻을 밝혔다.

현행 2천5백원인 수신료를 5천~6천원 정도로 인상한다고 한다. 그것이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사족까지 달았다.

그런데 무엇이 합리적인 수준이라는 것인가. 현 정부는 가계통신비 20%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집권 3년차에 접어든 지금 그 공약은 허울뿐인 메아리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통신사들을 앞세워 10초당 과금을 1초당 과금으로 인하한 정도가 전부다. 통신비 20% 인하를 통해 친서민 정책을 표방했던 정부가 방송수신료를 2백% 이상 인상하겠다는 게 논리적으로 타당한지 묻고 싶다.

수신료 인상을 통해 KBS 재원을 충당하고, KBS 2TV 광고 80%로 종편채널 먹을거리로 지원해 주려는 것은 누가 봐도 정치적 복선이 깔린 꼼수에 불과하다.

국민들의 90%가량은 지상파를 보기 위해 유료방송채널을 가입해야 한다. 정부는 1980년 이후 수신료가 인상된 바가 없다고 하지만, 역으로 유료방송 네트워크를 통하지 않고 순수하게 공중파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가구가 얼마나 되는가.

정부가 수신료 인상 카드를 꺼내 들기 전에 국민들이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먼저 제시돼야 마땅하다. 최소한 유료방송과 무료방송에 대한 선택권이 담보돼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지상파를 보기 위해 유료방송 요금을 따로 내야 하고, 매달 전기요금과 함께 수신료를 납부해야 하는 이중과세의 그늘은 여전하다. 최소한의 방송접근 환경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신료 2백% 인상에 동의할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수신료 인상에 대한 기술적 조건 외에 KBS 내부 상황은 더욱 가관이다. 지난해 김인규 사장은 기습 출근으로 치러진 취임사에서 탕평인사를 역설했다. 그런데 그의 과잉충성은 일부 시사프로그램 폐지에 이어 보복인사로 이어지고 있다. YTN에 이어 또다시 비판 언론인에 대한 재갈 물리기 작업에 혈안이 돼 있다.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면 더 빨리 달리지만, 언론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않고 오히려 퇴보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G20정상회의를 주최하는 나라의 지난해 언론자유지수가 69위로 추락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얼마 전 진실화해위원회가 의미 있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제5공화국 당시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탄압을 인정하고 국가의 적절한 조치를 권고한 것이다.

역사는 현재를 보는 또 다른 거울이다. 국민의 뜻과 무관하게 수신료를 올려 친정부 언론의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비판 언론인을 탄압한다고 해서 영구집권의 거름이 될 수 없다.

더 이상 언론이 정권의 전리품이 되어선 안된다. KBS와 정부는 국민들이 납득할 내용의 수신료 논의를 통해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피해야 한다. 또한 사규에도 어긋난 지방발령을 되돌려 언론인의 비판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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