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쩍은 북촌 한옥마을

제231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부문 / 한국일보 문준모 기자


   
 
  ▲ 한국일보 문준모 기자  
 
한국일보가 고발한 북촌 한옥마을 문제는 사실 오랫동안 한국사회에서 첨예한 이슈가 되고 있는 도시 재개발 문제의 또 다른 변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재개발은 통상 특정지역 부동산의 부가가치를 높여 누군가에게 팔기 위한 상업행위입니다. 그 과정에서 ‘원주민’은 자연스레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것이 관례가 됐습니다.

지난 10년간 보존사업이 진행된 북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서울시는 2000년 전통보존 명목으로 ‘북촌 가꾸기 사업’을 시작했고 주민들에게 한옥수선 비용 일부를 대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옥수선에 통상 드는 비용에 비해 지원금은 턱없이 적어 대부분 서민인 원주민들에겐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지원금의 목적은 원주민의 원래 요구였던 생활불편 개선보다 관광 상품화를 위한 외관 수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결국 이에 실망한 원주민들은 대부분 집을 내놓고 평생 살던 동네를 떠났습니다. 그 때부터 소위 강남 땅 부자들이 북촌을 점거하기 시작합니다. 새 주인들의 실거주지를 확인한 결과 강남이나 용산 등에 사는 부유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 회장 사모님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들은 평소엔 한옥을 비워놓고 살기 편한 본래 집에 살다가 손님을 접대할 때에만 가끔 북촌 한옥을 찾습니다.

북촌을 장악한 이들은 2000년대 중반부터 서울시 보조금을 받아가며 한옥을 뜯어 고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지하층(실제로는 1층)은 첨단 양옥에 밖에서 보이는 1층(실제 2층)만 한옥모양을 갖춘 ‘무늬만 한옥’이 등장합니다. 지반을 해치지 않고 자연조건을 그대로 수용하는 고유의 건축기법은 무시되고, 포크레인까지 들여 땅을 헤집어 놓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집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는 북촌 특성상 옆 한옥에 피해가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킬번씨 사고도 이런 난개발에 항의하다 벌어진 일입니다.

그러나 행정당국은 결국 가난한 원주민보다 부유한 이주민의 손을 들어줍니다. 서울시와 종로구청은 북촌을 관광 브랜드로 탈바꿈시킨다는 야심 찬 계획을 위해 한옥 본래 모습이 훼손된다는 호소를 사소한 민원으로 치부했습니다. 불편을 감수하고 본래 한옥에서 그냥 살던 대로 살겠다는 사람들의 권리는 짓밟히고, 구경꾼의 눈요기와 집값 불리기를 위해 본래 한옥을 부수겠다는 이들의 권리만 옹호됐습니다.

그 결과 북촌 한옥마을은 하나의 거대한 ‘빈집’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꼬마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한옥마을은 결국 민속촌이나 다름없습니다. 거주민의 삶까지 보존하지 못하는 한옥마을 보존정책은 결국 부자들만 살찌우는, 또 다른 이름의 재개발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한옥마을 보존사업을 각 지자체가 아니라 중앙정부에서 총괄토록 하는 관련 법 제ㆍ개정이 필요하다는 결론까지 이르게 됐습니다.

우선 한국일보의 노력을 인정해 준 기자협회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힘든 여건 속에서도 비교적 많은 시간과 인력을 확보해준 회사에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기자 못지않은 저널리즘을 보여주며 기사의 단초를 제공해주신 최재천 변호사와, 몸이 아픈 와중에도 수 차례 인터뷰에 응해주신 최금옥 여사에게 존경과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무엇보다 발이 부르트도록 현장을 뛰어다닌 견습 기자들에게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로 감사의 변을 대신할까 합니다. 이번 수상이 그들에게 훌륭한 기자로 성장하는 토대가 되어줄 거라 믿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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