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따라 보도하고 행동했던 기자들이 잇따라 징계성 인사 조치를 당하고 있다. 작년 이병순 사장 취임 반대 투쟁에 앞장섰던 KBS 김현석 기자는 최근 갑자기 춘천 총국으로 발령이 났다.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비판적으로 보도하며 현장을 지켰던 환경전문 노장 기자인 SBS 박수택 기자는 논설위원실로 가게 됐다.
두 기자의 공통점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이병순 사장 선임에 반대하며 사원행동을 이끌었던 KBS 김현석 기자는 해직기자와 해직교사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었고, 박수택 기자는 정부의 4대강 사업 추진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여러 차례 특종 보도와 기획 보도를 했다. 정권이 달가워하지 않는 행보를 해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KBS 김현석 기자는 초년병 시절, 이미 한 차례 지방 근무를 마쳤는데도 규정에도 없이 또다시 춘천으로 발령 났다. SBS 박수택 기자는 졸지에 평생을 지켰던 현장에서 내몰렸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들과의 최소한의 사전 협의조차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감시와 비판이란 기자의 본령에 충실했던 결과가 기자 개인에 대한 모욕으로 나타난 셈이다.
우리는 이번 인사 조치도, 유독 현 정부 들어 계속되고 있는 비판적인 기자들에 대한 징계의 연속선상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판단한다.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는 관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낙하산 논란을 빚었던 전임 KBS 이병순 사장의 취임 당시에도, 사내의 비판적 기자들에 대한 한밤중 기습인사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인사 대상자들은 사전 통보 한마디 없이 한밤중에 지방으로 발령 났다.
기자 개인의 생활은 물론이고, 갑자기 하루아침에 생활 터전이 바뀐 기자의 가정까지도 심각한 위협을 당했다. 사내에선 ‘한밤의 학살’이란 말까지 나왔다.
YTN의 경우 낙하산 사장 취임을 주도적으로 반대했던 기자 5명을 지방으로 발령했지만 법원은 이 인사조치가 부당하다고 판결한 바 있다. 그런데도 최근 비슷한 인사조치가 또 이뤄졌다. 낙하산 사장이 기자들의 비판 기능을 위축시킬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된 셈이다.
우리는 이 같은 일련의 인사 조치들이, 현재 우리 언론이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측에선 인사권에 따라 적법한 인사가 이뤄졌다고 항변하지만, 비판적인 기자들에게 본보기로 제재를 가한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숙청’으로까지 불리는 이병순 사장의 전격적인 인사가 가져온 ‘공포’의 효과는, 이 사장의 안착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윗선’에서도 이에 크게 만족했다는 후문도 들려온다.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를 용납하지 않는 권력, 그 권력이 점지한 언론사의 사장들이 인사권을 휘두르며 합법적으로 언론자유를 위축시켰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면, 자신과 가정이 징계의 대상이 된다는 두려움은 기자 개인을 순치시키고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든다. 순치된 기자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면 이는 우리 모두에게 비극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말할 수 있는 권리 없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규정과 상례를 벗어난 인사 발령을 지시한 경영진들은 지금이라도 이를 즉각 철회하기 바란다. 아울러, 후배 기자들에게 징계성 인사를 내린 경영진도, 한 때는 자신도 권력 감시와 비판을 자임했던 기자였음을 기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