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분노와 증오를 조장하지 말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편집위원회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0.03.16 15:27:33
부산 덕포동 여중생 이 모양의 납치 살해 피의자 김길태에 대한 언론보도가 점입가경이다.
입에 담는 것은 물론이고 생각하기조차 섬뜩한 구체적인 혐의들이 방송과 신문을 타고 생중계되는가 하면 김길태의 일거수일투족에 언론보도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김길태 체포 당시 시민들이 욕을 하고 때리는 장면이 여과 없이 안방까지 전달되고, 일부 보수 언론들은 벌써부터 사형을 얘기하고 있다.
경찰은 그동안 고집스럽게 지켜왔던 무죄추정의 원칙을 근거로 한 얼굴 비공개 관행을 손바닥 뒤집듯 버렸고, 한발 나아가 범행 내용도 낱낱이 공개하고 있다.
공권력이 범죄 피의자에게 대응보복을 하고 이에 일부 언론들은 두 손 들어 호응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전형적인 여론몰이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의 김길태 보도에는 분노와 증오만이 담겨 있다. 다분히 감정이 담긴 기사들과 황색 저널리즘이 지면을 도배하고 있다. 냉정함과 이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왜 이런 사건이 발생했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냉철한 반성과 대안 모색을 제안하고 촉구하는 것이 정론의 역할임을 보수 언론이라고 모르는 바가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점차 선진국병에 걸려가고 있다. 선진국병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사회에 대한 불만과 반항이 늘어가는 현상이다. 원한 없는 살인, 이유 없는 범죄의 확산이 그것이다.
이미 선진국병에 걸린 일본은 ‘도오리마(길거리 악마)’에 떨고 있다. 도오리마란 길거리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무차별적 상해를 입히는 범죄자를 뜻한다. 이런 선진국 범죄는 예방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그만큼 차별사회에 대한 무조건적 폭력은 사회 구성원간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는 무서운 병이다.
쉽지는 않지만 약자를 보호하고 낙오자를 양상하지 않는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제2의 김길태를 막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부녀자 연쇄살인범 강호순과 김길태 사건이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강호순·김길태의 양산은 그 사회에 책임이 있고, 그 가운데 언론의 책임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정부, 정치권, 검·경찰, 언론 모두 왜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됐는지 자성하고 되돌아볼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보수언론과 일부 언론들은 어디에도 반성의 목소리는 없다. 아집과 자기오만에 빠진, 대화가 통하지 않는 외고집 늙은이만이 연상될 뿐이다.
인터넷언론을 자극적인 황색 저널리즘이라고 그토록 비판했던 ‘정통 보수 언론들’은 지금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길 바란다. 더 이상 인민재판식 보도로 국민에게 분노와 증오만을 전달해서는 안 된다.
엽기범행의 무차별적 기사는 소녀의 영혼을 이승에 붙잡아 두고, 소녀 가족에게는 악몽을 계속 떠올리게 하는 잔인한 짓일 수 있다. 냉정을 되찾고 제자리로 돌아오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