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는 미국 특유 언론 문화의 산물"
한국 기자들이 본 헬렌 토머스
장우성 기자 jean@journalist.or.kr | 입력
2010.06.16 1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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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8월2일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오른쪽)이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마지막 브리핑을 마치고 백악관 베테랑 기자인 헬렌 토머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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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비난 발언으로 구설수에 올라 지난 7일 퇴직한 헬렌 토머스 기자는 수많은 ‘기록’을 세운 전설적인 기자다. 그를 가까이서 지켜봤던 워싱턴 특파원 출신 한국 기자들의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토머스를 2007년 직접 인터뷰했던 한용걸 세계일보 부장(국제부)은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한용걸 기자는 “외길을 걸은 사람답게 고집, 주관이 뚜렷해 보였다”며 “고령이었지만 사물을 꿰뚫어보는 직관력이나 판단력도 뛰어났다”고 말했다.
헬렌 토머스의 존재는 개인 능력 이전에 미국 특유의 언론문화와 취재환경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의견도 있다. 특히 청와대와 비교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는 정권이 바뀌면 따라 바뀐다. 길어도 2~3년에 그치는 게 보통이다. 50년 넘게 최고 권력자를 근거리에서 취재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했던 박찬수 한겨레 부국장(정치부)은 “케네디 대통령 때부터 활동한 토머스는 미국 대통령과 백악관을 통사(通史)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인물”이라며 “당대의 정권을 역사적으로 비교분석하는 그의 비판은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었고 이는 미국 언론과 백악관의 취재 시스템과도 큰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기자로서 토머스에 대해서는 평가를 유보하는 견해도 있다.
2000년대 초반 워싱턴특파원으로 활약했던 중앙일간지의 한 기자는 헬렌 토머스에 대한 평가 일면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엇을 썼는가’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 ‘무엇을 질문했는가’로 평가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뉴스를 찾아내는 기자라기보다는 적극적으로 현안에 개입해 스스로 뉴스거리가 되는 공적 인물(Public Figure)에 가까웠다는 뜻이다.
이 기자는 “워싱턴특파원으로 일할 때 토머스의 기사를 읽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의 발언은 몰라도 그가 쓴 기사가 주목을 받은 적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UPI를 떠난 뒤 그의 칼럼은 중앙무대에 공급되지 못했으며 기사로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자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워싱턴특파원을 지낸 중앙일간지의 한 기자도 “출입경력이 독보적이고 최연장자였기 때문에 상징적인 대우를 받았다”며 “꼭 토머스뿐 아니라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대부분 거침없이 질문하는 문화에 익숙하다”고 밝혔다.
이번 ‘불명예 퇴진’의 화근이 된 유대인 발언은 미국 내 정서를 볼 때 적절하지 못했다는 의견이 많았다. 아우슈비츠 집단학살의 상흔이 남아 있는 유대인들에게 “독일이나 폴란드로 돌아가라”고 말한 것은 인도주의·인권 문제를 건드린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갑작스러운 퇴진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도 적지않다. 한용걸 세계일보 부장은 “말실수 때문에 그의 평생에 걸친 경력이 무시당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국내외 언론이 그의 퇴진을 단편적으로 보도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