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있는 질식사
제238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방송부문 / MBC 김경호 기자
MBC 김경호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0.08.04 15: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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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김경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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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세탁기에 들어갔던 어린이가 질식해서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최근 2년 사이에 세 번이나 뉴스를 통해 전해진 소식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드럼세탁기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사고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그것도 한 업체의 세탁기에서만 세 번이나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사고 당시 판매된 해당 업체의 국내용과 수출용 드럼세탁기를 비교해봤습니다. 그 결과 안전 구조에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음을 알아냈습니다. 미국 수출용 세탁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어린이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안에서도 열리는 문이 달려있었던 반면, 국내용 세탁기는 안에서는 절대 열 수 없는 문을 달아 판매한 것이었습니다.
왜 이 업체는 굳이 국내에선 안에서 문이 열리지 않는 세탁기를 판매했던 것일까요. 문제의 부품을 납품한 이탈리아 제조업체들을 취재했습니다. 그 결과 당시 국내용과 수출용에 적용한 문의 잠금장치 가격에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서 판매된 세탁기의 잠금장치가 훨씬 싼 부품이었고, 국내에서 이 부품을 사용함으로써 해당 업체는 12억원의 납품 단가를 절약한 것이었습니다.
이 업체가 이처럼 국내와 미국의 소비자를 차별할 수 있었던 건 한국과 미국 정부의 서로 다른 안전규정에 원인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드럼세탁기 안전사고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었던 반면, 미국 등에서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어린이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규정을 마련해 시행해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미국에서 이 규정에 맞춰 안에서도 열리는 세탁기를 판매해 온 해당 업체가, 한국에선 규정이 없다는 핑계로 안에서 문이 열리지 않는 위험한 세탁기를 계속해서 판매해 온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업체는 2년 전 국내에서 두 명의 어린이가 사망한 뒤에도 해당 세탁기의 리콜을 실시하지 않았고, 세 번째 아이가 희생된 올해에야 뒤늦게 리콜을 실시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80만 대가 넘는 해당 세탁기는 여전히 위험한 상태 그대로 국내 가정에서 이용되고 있었습니다.
이번 보도를 계기로 소비자의 안전을 무시하는 업체와 정부의 행태가 달라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