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만행, 일본 전범기업을 추적한다

제239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부문 / 국민일보 김호경 기자


   
 
  ▲ 국민일보 김호경 기자  
 
지난해 10월 국민일보 편집국에 특별기획팀이 새로 꾸려졌다. 그 일원이 돼 기계적으로 아이템을 찾기 시작했다.

무심코 연합뉴스 지방 면을 뒤적이는데, 광주 발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라는 단체가 미쓰비시자동차 광주전시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시장 철거를 요구했다는 내용이었다.

“할머니들과 아픔을 함께 해달라”고 시민들에게 관심을 호소했다는 2매짜리 단신 기사. 근로정신대와 미쓰비시? 솔직히 처음 들어보는 조합이었다. 그러나 직감적으로 ‘기사는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들 사연을 취재하고, 시민모임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집회 현장을 스케치하면 1개면은 어렵지 않게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 차례 관심을 호소하는 정도. 잘 하면 2개면도 가능할까?

그러나 취재에 들어가 보니 그게 아니었다. 미쓰비시 외에도 미쓰이, 스미토모, 일본제철, 후지코시, 아소 등 일본 굴지의 기업들이 태평양전쟁 때 조선인 강제동원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조금씩 어림잡을 수 있었다.

하나하나 베일을 벗기는 기분. 피해자와 전문가들 입에서 ‘미불임금’이니 ‘공탁금’이니 ‘후생연금’이니 하는 용어들이 쏟아지고, ‘청구권 수혜기업 포스코’에 대한 성토까지 제기됐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러나 단발성으로 쓸 사안은 아니었다. 징용 피해자와 전범기업들에 대한 이야기. 본격적인 탐사보도가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잊혀진 만행…일본 전범기업을 추적한다’ 시리즈를 3월 1일부터 시작했다. 처음에 1〜2개면짜리 일회성 기사로 생각했던 사안이 매회 종합면 2개면 이상을 차지하는 18회짜리 중대형 기획으로 발전했다.

시간과 예산상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국내는 물론 일본 본토 곳곳, 나아가 러시아 사할린과 남양군도, 독일과 중국까지 발로 뛰었다. 관성적인 ‘지면 기여’ 차원에서 접근했던 발상이 어느새 사명감으로 변화했다.

광복 65년이 지났음에도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일본 대기업들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자체가 공론화된 적이 없던 한국 사회에서 언론이 분명한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이번 시리즈가 문제 해결에 얼마나 실질적인 기여를 했는지, 또는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역할을 한 데 대해 감히 자부심을 간직한다.

시리즈를 함께 이끌어 온 권기석·우성규 기자에게 새삼 고마움을 전한다. 늘 아카데믹하고 진정성 있는 면모로 기획안의 짜임새를 더욱 촘촘하게 엮어나갔던 이들로 인해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국무총리 산하 강제동원조사위 관계자들과 일본 현지의 풀뿌리 활동가들, 이 분들의 헌신적인 협조가 아니었다면 이번 기획은 진행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각의 냉소에 아랑곳하지 않고 변함없이 응원해주신 임순만 편집국장과 박정태 특집기획부장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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