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의 부지런함과 지혜로 세상을 움직이는 기자가 되자

[신년특집] 신묘년 토끼띠 기자 대담
연합 김민철 국제뉴스2부장(63년생)·윤보람 기자(87년생)



   
 
  ▲ 연합뉴스 윤보람 기자와 김민철 국제뉴스2부장.  
 
‘토끼의 재판’이라는 전래 동화가 있다. 토끼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처한 사람을 지혜를 발휘해 구해낸다는 이야기다. 지혜로 사람을 살리는 일, 기자의 소명과도 일맥상통한다. 이 때문에 토끼띠 기자들에게 더욱 기대를 걸게 된다.
토끼띠인 연합뉴스 김민철 국제뉴스2부장과 올해 입사한 윤보람 기자(수습)는 24살 차이 띠 동갑이다. 윤 기자가 태어난 1987년, 김 부장은 군 제대를 하고 기자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기자생활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의 수습기자와 시경캡, 사회부장, 국내 최초 남아공 특파원 등 쟁쟁한 이력을 가진 23년차 중견기자가 신묘년을 맞아 기억에 남을 자리를 가졌다. 대담은 9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 포토스튜디오에서 열렸다.


윤보람 기자(윤)=꿈꿔왔던 직장에서 사회생활의 첫걸음을 내딛게 돼 기쁩니다. 부담이 되고 걱정도 많이 돼요. 올해는 많은 걸 배우고 익혀 발전하기 위한 단계로 삼으려고 해요.
김민철 기자(김)=저도 어느덧 회사의 실무 책임자급에 속하는 연배가 됐어요. 특히 올해가 토끼띠해라 남다르네요. 토끼는 영민하고 부지런하다고 하죠. 제가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웃음) 토끼의 속성을 지향하고 중간 관리자 입장에서 좀더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가지려고 해요.

윤=저도 곧 ‘사쓰마와리’ 생활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선배들이 다들 힘들고 고되지만 지나고 보면 가장 재미있는 때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김=연합뉴스는 항상 수습을 1월에 시작해요. 저도 수습생활 자체가 힘든데 가장 추울 때와 겹쳐서 심리적 불안이 컸어요. 남자로서는 군대 다음으로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선배 지시를 따라 잘 적응했고 별탈없이 수습을 마쳤던 걸로 기억해요. 에피소드도 많이 남아요. 제가 수습 때 성동경찰서와 한양대를 2진으로 출입했어요. 학생회관 ‘마와리’를 도는데 수배 중이던 임종석 당시 전대협 의장이 사무실 나무의자에서 자고 있는 거예요. 임 의장이 놀라 “당신은 누구냐. 이런 이른 시간에…”라고 묻기에 “연합통신 기자다, 연합 기자는 원래 부지런해서 아침 일찍 다닌다”고 했어요. 너무 경계해서 인터뷰를 못하고 나왔죠. 지금 생각하면 특종 기회였는데….(웃음) 2001년 민주당 출입할 때 임종석 ‘의원’을 만나 당시 이야기를 하니까 기억을 못하더라고요. 아무튼 기자는 현장 취재를 원칙으로 하고 반드시 발품을 팔아야 해요. 엉덩이가 무거우면 안 되죠. 수습의 덕목은 무엇보다 성실과 정직이에요. 그리고 신문 기사를 많이 읽어보길 권해요.

윤=모든 기자들이 특파원을 꿈꿉니다. 저도 나중에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어학은 기본이겠지만 특별히 준비해야 할 게 있을까요.
김=평판이 중요하죠. 선배들이 후배들을 지켜보며 판단을 합니다.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착실한지…. 자기 원하는 지역에 나가기 위해서는 초년병 시절에 정말 전력투구를 해야 해요. 일반 기업체 직원들과 달리 일과시간 뒤에도 취재원을 꾸준히 관리한다든지, 출입처와 취재대상의 현안을 파악한다든지 하는 거죠.

윤=훌륭한 기자가 되려면 다양한 취재원을 만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선배께서는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김=결국 취재원에게 신뢰를 얻어야죠. 예를 들어 얄팍한 이야기 하나 듣고 취재원 뒤통수 때리는 식으로 보도하는 건 되레 신뢰를 잃을 수 있어요. 미래를 내다보고 취재원과 신뢰를 쌓아야 자기 출입처의 진면모를 알 수 있죠. 한편으론 취재원에 동화돼서도 안됩니다. 그럼 기사를 놓치거나 잘못 쓸 수도 있어요. 사람이니까 자꾸 만나면 인간적으로 친해지죠. 하지만 ‘취재원과 기자’라는 기본적 관계를 항상 마음에 새겨둬야 해요. 수습기자들이 술 걱정도 많이 하죠. 술을 잘하면 아무래도 취재하는 데 도움은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 회사만 봐도 폭탄주 두 잔 주량에 유능한 기자가 된 분들이 많이 있어요.(웃음)

윤=많은 젊은이들이 기자란 권력을 견제·감시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기능이 약화된 건 아닌가 의구심을 갖는 기자 지망생들도 있어요.
김=제가 기자가 된 동기도 대학시절 경험과 관련이 있어요. 제가 81학번인데요. 전두환 정권 시대죠. 교내엔 백골단이라는 사복경찰들이 상주해서 시위하는 학생들을 잡아가곤 했어요. 그런 분위기에서 1987년 제대하고 복학 준비할 때 민주화 바람이 불었어요. 민주화 열기와 함께 신문을 포함해 언론매체들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 때죠. 변화하는 시대상을 보면서 자연스레 언론사 입사를 준비했죠. 당시 대학생들의 선호 직장은 증권사와 언론사였지만 전 언론을 택한 거죠. 권력 감시는 저널리즘이 절대 놓칠 수 없는 기능입니다. 사람에 따라 견해차는 있지만 여전히 한국언론의 주요 기능이고 핵심 과제라고 생각해요.

윤=저는 특파원들을 보면서 기자에 대한 꿈을 키웠어요. 해외에 나가서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뉴스를 알리고 전달하는 일이 의미있어 보였어요. 대학에 진학하면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면서도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직업이 어떤 게 있을까 고민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언론사 인턴생활을 하면서 기자가 바로 그런 직업이라는 확신을 얻었죠.
김=지금 언론 환경이 크게 달라지고 있어요. 미디어 빅뱅 시대, 정보 홍수 시대에요. 이럴수록 기자가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해요. 어떤 정보가 현 사회상을 가장 정확히 반영하는 것인지, 어느 정보가 진실인지 더 혼란스럽거든요. 훈련된 기자가 독자들의 등대가 돼야죠. 매체가 많아질수록 고도의 숙련된 기자는 더욱 필요합니다.

윤=기자의 또 다른 매력은 일을 하면서도 다양한 지식을 얻고 늘 공부하고 배울 수 있다는 점 같아요. 이를 바탕으로 사회를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거죠.
김=그래요. 항상 생각하는 기자가 돼야 해요. 특히 우리 같은 통신사 기자는 24시간이 마감이죠. 가장 빨리 기사를 써야 하고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야 해요. 속보의 압박이 크죠. 그런 생활을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사회현상을 전달하는 데 급급하기 쉬워요. 자기 담당 분야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세상을 움직이는 기사를 써야 합니다.

윤=이제 막 뛰어든, 많이 부족한 후배지만 6개월 수습을 무사히 마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기자가 된 것, 우리 회사에 입사한 것 정말 축하해요. 언론의 언론, 텍스트 역할을 하는 통신사 기자이기 때문에 더 많은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좋은 기자가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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