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의 무지개
[이집트 시민혁명 현장 취재기]MBC 왕종명 기자
MBC 왕종명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1.02.23 15: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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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왕종명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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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덜컹거려도 트렁크 문이 열리는 구닥다리 택시를 타고 카이로 시내에 들어섰다. 탱크가 반겼고 소규모 시위대도 발견했다. 기사에게 순진한 척 물었다. “저 시위대가 뭐랍니까?” 답이 뜻밖이다. “무바라크 굿! 무바라크 굿!” ‘이 양반이 우리 처음 왔다고 놀리나?’ 언짢았지만 곧 사실이란 걸 알았다.
무바라크가 대국민 성명으로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날. 친 정부 시위대가 거리로 몰려 나온 거다. 나를 타흐리르 광장 입구에서 맞이한 시위대 역시 이들이었다. “원하는 걸 다 해줬다.” “대통령이자 아버지다.” “몇 달을 못 기다려 주나?” “반 정부 시위대가 이집트를 불안한 국가로 만들고 있다.”
양측 간 대치는 충돌로 이어졌다. 정부에서 고용한 깡패로 드러났지만 대검을 든 친 정부 시위대가 말과 낙타를 타고 광장을 질주했다. 반 정부 시위대를 해산시켜 보겠다는 거다. 새벽엔 총소리가 났다. 7명이 숨졌다. 해가 뜨고 광장에 다시 갔더니 반 정부 시위대가 몰려와 하소연을 했다. “총을 쏜 사람을 붙잡았다. 사복차림인데 지갑에 경찰 신분증이 있더라.” 조준 사격을 정부가 사주했다는 얘기다.
친 정부 시위대와 군이 외국 기자에게 민감하게 반응했다. 무바라크에 대해 불리한 기사만 쓰고 있다는 거다. CNN의 앤더슨 쿠퍼가 얻어맞고 한국 기자들의 무용담이 줄을 잇기 시작한 게 이때다. MBC 동료들은 군에 끌려가 취조를 당했다. 후배 카메라 기자는 몸수색 과정에서 스마트폰을 내보였다가 시위대의 전리품으로 빼앗겼다. 타흐리르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호텔 발코니에서 촬영하던 한 방송사 취재팀의 방문이 열리더니 이집트 사복 경찰이 들이닥쳤다. 마스터키로 열고 들어온 거다. “그만 찍고 호텔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1백만인 행진이 예고된 금요일. 광장 취재는 필수였고 방송카메라 반입은 꿈도 못 꿨다. 나와 카메라 기자는 여권과 휴대전화만 들고 나섰다. 관광객 행세를 했다. 광장 입구에는 철조망, 군인, 탱크의 3중 방어진이 구축돼 있었다. 아무리 휴대전화라도 대놓고 찍으면 빼앗길 분위기, 나는 ‘동북아시아 관광객의 직접찍기’ 시늉으로 스탠드업(현장 즉석 리포팅)을 잡았다. “철조망이 처져 있는데 친-반 시위대 충돌을 막으려는 겁니다.”
긴 행렬 속, 두 시간의 기다림과 10여 차례의 검문을 거쳐 광장에 들어갔다. 휴대전화가 바빠졌다. 수십만 명이 연출하는, 전혀 정리되지 않은 풍경이라 담을 게 많았다. 어린 아이의 구호를 따라하는 어른들. 무슬림의 기도를 보호해주는 기독교인의 인간띠. 노래하고 춤추고 토론하며 그들은 ‘아름다운 시위’를 그려내고 있었다. 얼마나 모인 걸까? 광장 주변 옥상이 필요했다. 몇 번의 거절 끝에 목좋은 한 건물의 관리인이 “기다려 보라”고 하더니 대뜸 ‘입장료’를 요구했다. 흥정에 능한 한국 기자들, 부른 값의 반만 주고 옥상행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이게 웬일, 좁아터진 옥상엔 전 세계 언론인 수십 명이 줄을 서서 촬영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 관리인은 ‘긴 대목’을 위해서라도 무바라크가 좀더 권좌에 오래 있길 바랐을지 모른다.
행진은 없었다. ‘나를 따르라’는 단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자 카이로 시내는 빠르게 일상으로 회복했고 시위 동력은 급격히 떨어지는 듯했다. “이집트 사람들, 뒷심 부족하네” 나는 푸념했다. 당장 사퇴하라던 미국도 말을 바꿔 연착륙을 유도했다. 이집트 정부는 “더 이상 못 참겠다”며 무력 진압을 경고했다. ‘이대로 흐지부지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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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지 시간으로 2월 10일 오후 3시 27분 촬영한 카이로 상공의 무지개. (사진=왕종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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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송출하고 낮잠을 자려는데 ‘꽝’하고 굉음이 때린다. “헉! 무력 진압이 시작됐나?” 반사적으로 커튼을 젖혔다. 카이로 시내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천둥소리였던 거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두어 시간 눈을 붙였다. 다시 젖힌 커튼. “우와” 거대한 무지개가 카이로 상공을 가르고 있었다. ‘길조겠지? 하늘이 무슨 뜻을 땅에 전하려는 걸까? 무지개 끝에 이집트 국민이 꿈꾸는 파란 나라가 있을까?’ 순진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카이로 시내를 걷다 보면 젊은 여성이 저급한 품질의 일회용 휴지를 사라고 다가온다. “저래 봬도 대졸자예요. 대학 나와도 할 게 없으니까 저거라도….” 현지 가이드가 귀띔해줬다. 무지개의 힘이 통했는지 반전과 재반전 끝에 무바라크는 하야했다. 인구의 3분의 2가 30세 이하인 기형적 나라 이집트. ‘키파야 혁명’의 진짜 끝은 내가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친 그 젊은 여성과 친구들이 이집트 사회에서 제법 그럴 듯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때일 거다. 무지개의 힘을 더 믿어본다.
왕종명 기자는 MBC 국제부에 근무하고 있으며 2월2일부터 13일까지 이집트 카이로 현지에서 취재활동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