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맛쇼
[언론다시보기] 김보라미 변호사
김보라미 변호사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1.06.13 16:2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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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라미 변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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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트루맛쇼’의 감독이라는 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첫 통화에서 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동안 펼쳐 놓았다. 1인 미디어와 관련된 표현의 자유에 새 세상을 꼭 열어 보고 싶다던 그의 꿈. 듣기에도, 상상하기에도 꽤 근사했다. 하지만 영화를 너무 잘 만들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내부고발자의 존재 자체가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일까. 한 지상파 방송국은 영화 개봉 1주일을 앞두고 급하게 이 영화에 대하여 상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하였다.
지상파, 트루맛쇼 가처분 신청하지만 이 상영금지 가처분의 내용은 놀라울 정도로 지상파 방송국에 불리한 내용을 근거로 삼아 구성되어 있었다. 이 지상파 방송국이 주장한 내용을 실제로도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의 언론의 자유는 한층 뒤로 퇴보할 것 같다.
그들은 PD수첩 사건들에서 그토록 자존심을 걸고 지켜왔던 촬영원본요구 거부 전통과 정반대로 이 사건에서는 신청과 동시에 이 사건 영화를 그들에게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국민의 관심사가 되어야 할 언론법 개정문제를 방송에 내보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편파 징계를 받은 사건을 이 사건에서는 정당한 결정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참으로 믿기질 않았다.
어쩌면 이 지상파 방송국이 멀쩡한 시사교양국 PD들을 유배시킨 일들은 전혀 인과관계 없이 발생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이 지상파 방송국의 경영자들은 언론이라기보다는 방송국의 언론의 자유를 핍박한 사람들과 같은 입장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에서 이 지상파 방송국 사장이 사원들과 함께 콘텐츠 1위 탈환을 외치는 모습은 왠지 씁쓸하다. 저널리즘과 언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사라진 콘텐츠에는 과연 무엇이 남을까.
대기업 비판 제대로 보도안돼종편의 시대가 열리고 방송 콘텐츠도 척박한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해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사 광고판매를 확대시키려는 정책을 만드는 데 혈안이다. 시민들이 직면한 현실과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들, 그리고 여기에 얽힌 그들의 꿈들을 돈벌이 수단의 콘텐츠에서 과연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
지금도 방송에서는 중요 광고주들인 대기업을 비판하는 뉴스들이 제대로 보도조차 되지 않는다. 삼성전자공장에서 사망한 백혈병 환자들에 대한 뉴스는 우리 이웃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중요한 뉴스인데도 9시뉴스에서는 사실상 제대로 보도되지 못했다.
미디어 산업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들은 그동안 우리의 문화를 형성하며 미래의 꿈과 열정을 형성해나가는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그래서 기존의 전통적인 의미의 미디어산업이 보여주는 불공정한 모습들, 자본과 권력에 친화적인 모습은 불안하고 불쾌하다.
결국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앙드레 고르가 ‘에콜로지카’에서 말했던 것처럼 “심층에 있는 동기는 항상 전문가의 지배에 대항하여, 화폐적 수량화와 평가에 대항하여, 또는 개인이 자율성을 발휘하고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능력이 없어진 그 자리를 상품관계, 고객이 차지하는 데에 대항하여 체험된 세계를 지키는 것”들을 지향하는 미디어들이 소위 전통적인 미디어들의 지위를 계속 위협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법원, 용감한 감독 손 들어줘법원은 이 사건 가처분 사건에서 이 용감한 감독의 손을 들어주었다. 나는 상영금지가처분의 부담을 떨쳐버린 그 주말에 광화문에서 친구들과, 그의 꿈이 영화관 빼곡한 관객들의 박장대소와 함께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시대를 위한 일상의 문제제기와 감성에 대한 공유가 탁월함으로 펼쳐질 때, 이는 영웅의 시대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영웅들은 슈퍼맨이나 배트맨처럼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자들이 아니라 그저 일상의 경험담을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공유할 수 있는 평범한 일반인들일 것이다. 김재환 감독의 트루맛쇼의 성공과 또 다른 실험들이 이 시대 소박한 영웅들을 불러내기를 희망하면서 여러 가지 몽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