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료 인상보다 공공성 회복이 먼저다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KBS 수신료 인상 법안처리가 6월 국회에서 사실상 무산됐다. 28일 저녁 늦게까지 국회 문화체육방송통신위원회는 여야 의원간의 몸싸움으로 하루 종일 몸살을 앓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수신료 인상안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며 수적 우위를 앞세워 강행 처리하려는 시도를 계속했고, 민주당 의원들은 문방위 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소집하며 사실상 회의장을 점거했다. 또 문방위 소속 여성 의원을 의장석에 앉힌 뒤 남성 문방위원들이 호위하며 사실상 의장석을 점거하는 실력 행사로 맞섰다.

수신료는 전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준조세 성격을 띠고 있다. 그만큼 국민적 동의와 절차적 정당성 확보가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한 합리적 여론수렴 절차가 거의 없었고, 오직 정략과 힘의 논리에 휘둘려 파행을 빚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강공 일변도다. 지난 21일에는 KBS 수신료를 2천5백원에서 3천5백원으로 40%나 인상하는 안건을 국회 문방위 소위원회에서 단독으로 처리했다. 야당 의원들의 질의권은 제한하고 의사봉도 두드리지 않은 채 화급히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는 없었다.

KBS 수신료 인상에는 국민의 80.2%가 반대하고 있다. 국회가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이라면 이런 여론에 귀를 기울이는 게 마땅하다. 또 수신료를 인상하려면 KBS가 독립성과 공공성을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을 만큼 방송을 했어야 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KBS는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방송의 공공성 논란에 여러 차례 휩싸였다. 국회에서 KBS 수신료 인상안이 상정된 지금도 KBS는 한국전쟁 특집으로 일제 때 만주군 간도특설대에 근무하며 독립군을 잡아들였던 백선엽 장군을 전쟁 영웅으로 둔갑시켰다. 또 ‘독재자’ 이승만 전 대통령을 칭송하는 프로그램을 8월 방송 예정으로 제작하고 있다.

국민들의 들끓는 반대 여론은 무시한 채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방송이 과연 공영방송인가 묻고 싶다. 더욱이 한나라당이 KBS 수신료 인상에 목을 매는 이유로 KBS에 광고를 줄여서 종합편성채널에 광고를 나눠주기 위한 것이라는 소문도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종편언론사를 살리기 위해 국민들 주머니를 터는 행위나 다름없다. 지금 서민 경제는 파탄지경이다. 저축은행 사태로 서민들은 절망하고 있고, 대학생들도 등록금 대책을 호소하며 눈물 흘리고 있다.

민생이 이렇게 어려울 때 한나라당이 KBS 수신료에 집착한다면 국민의 비판을 면할 수 없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원내수석 부대표는 최근 ‘7〜8월에 충분한 시간을 갖고 수신료 문제를 다룬 뒤 8월 임시국회에서의 수신료 인상안 표결처리’를 중재안으로 마련했다.

KBS 수신료 인상은 그렇게 다급한 현안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문방위원들은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만약 한나라당이 국민적 동의 없이 수신료 인상을 강행한다면 25년 만에 제2의 수신료 거부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날 것이다. 또한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한 낙선운동이 범국민적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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