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미래 탄탄…기자는 여전히 매력적인 직업"

[창립 47주년 편집국장 좌담] 신문·기자를 말하다



   
 
  ▲ 이충재·전영기·박찬수 편집국장이 지난 13일 신문·기자를 말한다를 주제로 좌담을 마친 뒤 한국프레스센터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진부한 말이지만 신문은 위기다. 열독률이 추락하고 구독자는 줄어드는 반면 신문을 위협하는 뉴미디어는 넘쳐난다. 연말에는 종편까지 출범한다. 이전과는 판연히 다른 언론환경이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열악한 언론환경은 기자들에게 열패감을 안기고 있다. 자존감과 사명의식은 박제화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신문의 미래는 없는가. 그리고 기자들의 자존감은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편집국장들과 함께 해법을 모색했다. 좌담은 13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13층 기자협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참석자(가나다 순)
박찬수 한겨레 편집국장
이충재 한국일보 편집국장
전영기 중앙일보 편집국장
사회=김신용 본보 편집국장


-세 분 모두 편집국장 1년차다. 신문 제작의 원칙이랄까. 어떤 면에 주안점을 두고 신문을 제작하고 있나.
전영기=2011년 한국은 신념이 과잉하고 책임이 결핍된 사회다. 80년대 이래로 주의·주장, 신념들이 여야, 청와대,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언론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나라의 혼을 빼놓고 있다. 80년대 신념들이 민주화의 꽃을 피웠다면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키워드는 책임이다. 실제로 최장집 교수 같은 분들도 막스 베버를 인용하면서 ‘신념에서 책임으로’라는 표현을 썼다. 가치의 패러다임이 신념에서 책임으로 옮겨오고 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 그 이유는 지도자가 자기 국민에게 희생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역시 책임과 관련된 얘기다. 책임의 가치, 희생의 가치에 대한 화두를 더 많은 리더들에게 던져주는 것이 신문의 역할이다.

이충재=기자들에게 힘이 있는 신문을 만들자고 강조한다. 90년대 들어 언론의 연성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비판의식이 약화됐다.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라는 신문 본연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 한국일보는 적극적 중도, 개혁적 중도를 내세우고 있다. 진보적 의제나 이슈를 외면하지 않고 적극 부닥쳐 목소리를 내려고 한다.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해 일관된 목소리를 내자는 차원에서 힘 있는 신문을 강조하고 있다.

“사건의 이면 다룬 깊이 있는 이야기는 디지털매체와 다른 신문만의 경쟁력”



   
 
  ▲ 박찬수 한겨레 편집국장  
 
박찬수=
독자들이 한겨레신문을 집어 드는 이유는 무얼까. 한겨레를 통해서 우리 사회를 보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진보적인 시각으로 본 한국사회의 중요 현안들을 신문에 담으려고 한다. 최근 한두 달, 한겨레와 중앙일보 1면 머리기사를 비교하면 겹치는 부분이 없다. 다르게 만들려고 하기보다는 진보적 시각으로 사회를 보니까 자연스럽게 달라진 것이다. 다름은 소통의 단절이 아니다. 한겨레 시각에 동조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합리적 보수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진보언론을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기자들에게 기사 내용은 래디컬하게 급진적으로 쓰더라도 기사 단어나 제목은 품위 있고 절제된 표현을 쓰자고 강조한다. 작은 단어나 표현들이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또 하나는 디지털 매체와 경쟁이다. 신문의 속보성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 신문이 전담했던 뉴스와 정보는 디지털 매체를 통해 독자들에게 더 빨리 전파된다. 그러나 디지털매체는 사건을 단순 전달할 뿐 사건의 이면은 보도하지 못한다. 고도로 훈련을 받은 숙련된 기자들만이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달한다.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 뒤에 감춰진 사람과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야 한다.

-종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새로운 미디어 등장으로 언론환경에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신문의 역할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흐름들을 지면에 어떻게 반영하고 있나.
전영기=신문은 책임이 있지만 뉴미디어는 책임이 덜하다는 점에서 신문과 뉴미디어는 분명히 다르다. 최근 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의 한 파워블로거가 업체로부터 뒷돈 2억원을 챙긴 사건이 있었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뉴미디어의 문제다. 트위터만 하더라도 북아프리카에서 민주화의 횃불이었는데 영국에서는 폭동의 수단이 됐다. SNS의 장단점을 가려서 칠 것은 치고, 고양할 것은 고양해야 한다. 시골의사 박경철씨, 안철수 교수, 조국 교수 등의 가치 있는 발언을 중앙일보는 크게 다룬다. 모두 트위터 세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분들이다. 책임을 지고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나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를 다루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뉴미디어의 책임 없음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가치와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은 아무런 장벽 없이 다룬다. 열린보수로서 뉴미디어에 대한 중앙일보의 태도다.

이충재=플랫폼으로서 종이신문의 역할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신문 본연의 권력에 대한 비판이나 사회의 공론장 역할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커지고 있다. 다양한 플랫폼에서 정보가 양산되면서 부작용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신문의 기본적 역할은 강해질 것이다. 언론환경 변화의 핵심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다. 지금까지 ‘이런 기사가 중요하니까 알아두라’는 식의 공급자 마인드였다면 이제는 소비자, 독자들의 참여를 높이는 열린 생산구조로 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기사 생산 과정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박찬수=광고시장이 정체되고 왜곡된 상황에서 거대 신문사들의 종편은 신문사 경영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한다. 그러나 지면 제작에 한정해서 본다면 종편은 신문만큼 수준 높은 저널리즘을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광고와 수익에 생존을 거는 방송의 속성상 종편도 보도보다는 오락, 드라마로 가지 않을까 싶다. 신문은 SNS와 연대·제휴해야 한다. 최근 서울 강남이 수해 피해를 입었을 때 한겨레는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을 1면에 실었다. 사진기자들이 찍은 사진보다 훨씬 생생하고 현실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트위터에 올라온 기사도 1면에 나갈 수 있다. 문제는 신뢰성이다. 트위터에 좋은 기사들이 많지만 믿을 수 없는 사실도 있다. 신문에 실릴 때 엄격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트위터 등 SNS에 돌아다니는 숱한 뉴스를 빨리 검증해 싣는 것이 당면한 과제다.

-국내 신문사에 통합뉴스룸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통합뉴스룸 진행 상황과 통합뉴스룸이 성공하기 위해서 어떤 개선책이 필요한지 점검했으면 좋겠다.
이충재=온·오프라인 통합 필요성이 제기돼 온라인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아이닷컴과 통합하기로 했다. 이달 중 온라인 편집국을 신문 편집국으로 가져오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 전반적인 흐름이 종이신문에서 웹, 모바일 기반으로 옮겨가고 있다. 문제는 웹 기반으로 가는 시점이 언제냐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원소스 멀티유즈’라고 할 때 신문기사를 플랫폼에 맞게 재가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인력과 재원이 뒤따라야 하는데 쉽지 않고 수익도 창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통합뉴스룸 운영에 여러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다양한 실험을 하고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박찬수=온·오프라인 편집국이 하나로 합쳐져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그런 계획을 세우고 있다. 다만 통합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면 면밀한 준비와 사전 검토가 있어야 한다. 한때 오프라인 편집국에 온라인 부서를 뒀는데, 오프라인 중심으로 신문을 만들면서 온라인 부서가 활성화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한겨레는 지난 3월부터 에디터제를 도입해서 취재와 편집을 하나로 통합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에디터가 온·오프 통합부서를 관장하면서 온·오프라인 기사를 동시에 출고하는 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념은 과잉하고 책임을 결핍돼 있다. 책임·희생의 가치를 신문에 담아야”



   
 
  ▲ 전영기 중앙일보 편집국장  
 
전영기=
중앙일보는 편집국 한가운데에 온라인 편집국이 있다. 그런 점에서 온·오프 통합이 구조적으로 돼 있는 셈이다. 지난 5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국가안보팀 멤버들이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는 작전을 지켜보는 사진이 있었다. 온라인 편집국은 그 사진에서 오바마가 쪼그리듯 앉아 있는 모습에 주목해 기사를 썼다. 온라인에서 굉장한 반향을 일으킨 그 기사를 신문 1면톱에 그대로 실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차이점이 있다면 타깃 소비자가 다르다는 점이다. 오프라인 신문은 리더, 의사결정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속성이 있는 반면 온라인은 일반 국민한테 영향을 준다.

-국내신문의 페이지네이션이 ‘종합-사회-국제-오피니언면’ 등으로 획일화돼 있다는 지적이 있다. 지면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나.
전영기=중앙일보는 종합면 다음에 사회면이 아닌 국제면을 배치하고 있다. 글로벌 시대 아닌가. 요즘 중국 관련 기사도 전면에 자주 배치한다.

이충재=최근 2면이 행정 기사가 아닌 화제 위주로 간다든지 국제면의 전진배치, 지역면을 뒤로 돌리는 등 신문마다 다양한 시도들이 있다. 부분적인 변화가 필요하나 전반적으로 독자들이 페이지네이션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박찬수=몇 년 전 다녀온 세계신문협회 총회(WAN)에서 포르투갈 신문 ‘I’가 단연 화제였다. I는 포르투갈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며 부수를 크게 늘린 신문인데, 인상 깊었던 게 1면이 오피니언 면이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정보와 뉴스는 다른 디지털매체와 겹칠 수 있지만 지식인들이 쓰는 칼럼은 신문밖에 담을 수 없다. 그래서 오피니언면을 가장 앞세운다”는 얘기를 하더라. 신문이 갖고 있는 큰 경쟁력 중 하나가 오피니언면이다. 신문도 오피니언면을 1면 다음으로 주목도가 높은 뒷면에 배치하고 있다. 오피니언면을 어떻게 다변화해 경쟁력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전영기=1면에 오피니언면의 효과를 내는 여지는 있다. 8월13일자 중앙일보 1면톱 기사가 ‘세계경제 진단…장하준, 재정위기 해법을 말하다’였는데 “경제 체력이 약할 때는 긴축하면 안된다”는 메시지였다. 그 전날 신현송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1면에 실었다. “이런 금융위기가 진행되면 미국의 헤지펀드가 한국에 몰려올 것이다”라는 일종의 의견이었다. 강한 메시지를 가진 저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1면에 끌어냄으로써 오피니언면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 페이지네이션은 관심 있는 분야를 쉽게 찾기 위해 제공하는 독자 서비스다. 그것을 절대적으로 생각하면 영역이 되고 기득권이 된다. 지면 생산의 이기적인 속성을 깨야 한다.

박찬수=1면이나 페이지네이션을 바꾸는 것은 내부 공급자 마인드다. 우리는 중요하다고 생각해 1면에서 5면까지 쫙 펼쳤지만 독자들은 ‘이 문제 가지고 너무 무겁게 펼치는 것 아니냐’고 받아들일 수 있다. 우리가 어떻게 만들 것이냐는 생각보다 독자들의 반응을 면밀하게 살핀 다음에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자사 이기주의·정파성이 기자를 지치게 했다. 언론은 스스로 반성해야”

-사건, 법조 부서 기피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그만큼 기자들의 열정이 식고 있다는 뜻일 수 있다.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나.


   
 
  ▲ 이충재 한국일보 편집국장  
 
이충재=
한국일보 기자들은 커리어플랜을 세운다. 기자들이 경력과 희망부서, 건의사항 등을 전산화된 프로그램에 올리면 편집국장이 수시로 보고 인사 때 반영한다. 법조나 사회부 기피현상은 힘든 일을 꺼리는 사회 전반적인 현상이다. 기자들의 열정 문제는 우리나라 언론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IMF외환위기 이후 언론사가 어려워지면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자사 이기주의가 팽배해졌다. 자본 예속 현상이 심화되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정파성 문제도 발생했다. 이 모든 것이 젊은 기자들의 열정을 식게 한 요인이다. 언론은 자성해야 한다.

박찬수=이 선배의 지적에 공감한다. 한국언론재단의 조사를 보면 기자들의 만족도가 뚝 떨어지기 시작한 게 IMF외환위기 직후부터다.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되고 DJ로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본격화된 언론간 싸움이 기자들의 만족도를 떨어뜨렸다. 언론사가 젊은 기자들의 욕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최근에 시경캡, 경찰기자들과 가진 식사에서 ‘경찰서 라인별로 사건팀을 꾸리는 것이 효과적인가’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경찰서 기자실이 젊은 기자들의 활동이나 창발성을 억압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종로, 마포 라인이 아니라 환경, 시민사회단체 담당 등 분야별로 사건팀을 꾸려 심층취재를 맡기면 젊은 기자들의 동기를 유발할 수 있지 않을까. 지면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활력을 주는 것은 사회부 기자들이다. 사회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신문사의 경영위기로 기자들이 비즈니스 영역으로 내몰리고 있다. 노골적이지 않지만 협찬, 행사 등에 동원된다. 이런 현실에 기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충재=경영이 어렵다보니 광고나 협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느 정도냐 하는 것인데,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서 언론의 본분이나 기자들의 자존감을 훼손시켜서는 안된다. 사익과 공익 사이에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박찬수=기자 개개인의 판단이 중요하다. 나는 저널리스트라는 생각을 갖고 어떤 요구가 오더라도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고 대응해야 한다. 기사에 대한 책임은 기자 본인이 진다. 국장, 부장, 차장이 시켜서 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판단해서 ‘이것은 내가 쓸 기사가 아니다’라면 거부해야 한다. 외적인 상황으로 돌리기에는 신문산업 자체가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외적인 상황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자 개개인이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영기=직업적으로 기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수한 집단이다. 기자만큼 애국적이고 공익적이고 국익을 생각하는 집단은 없다. 대통령은 지지율, 국회의원은 차기 선거, 대기업은 매출 등 자기 영역에 매진하는데 기자는 공익과 국익을 드러내는 데 존재의 가치를 둔다. 이런 비전과 가치를 서로 나누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선후배간, 신문사간에 서로 비전을 고양하고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한다. 한국에서 신문은 사양산업이 아니다. 신문은 다이내믹한 한국사회에서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전통을 갖고 있다. 기자는 또 라이터로서 매력이 있다.

-명예, 자존감, 소명의식 등이 기자들과 먼 단어가 되고, 기자들은 점점 샐러리맨화되고 있다. 자존감, 소명의식 등을 복원하고 기자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방법은 없을까.
전영기=일종의 구호를 만들었다. ‘꿈을 담아내는 기적의 종이.’ 중앙일보의 별명이다. 미디어에 왜 꿈을 못 담아내나. 청년실업을 제로로 만드는 꿈, 인간의 수명을 150살로 연장할 수 있다는 연구를 북돋우는 꿈들…. 기적의 종이는 레토릭이 아니다. 신문의 질감은 방송, 뉴미디어와 다르다. 읽다가 중단하고 생각한 뒤 다시 볼 수 있는 마력이 있다. ‘사실은 신성하다.’ 중앙일보의 신앙이다. 신문만큼 신뢰성 있는 매체가 어디에 있나. 모든 팩트에 대해 4~5번의 검증을 거치는 신문은 사실 자체를 신성하게 하는 미디어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메시지가 세상을 바꾼다.’ 중앙일보의 강령이다. 신문은 사실을 가지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미디어다. 이런 점을 자각하면서 목적의식을 가져야 한다. 신문기자는 온라인이나 방송 등 다른 어떤 집단보다 좋은 자산을 가지고 있다. 한국신문은 ‘사실, 강한 메시지’를 가지고 대한민국의 산업화, 민주화를 이루어냈다. 꿈을 담아냈다. 비전의 영역 속에서 해나가면 할 만하지 않을까.

박찬수=종이신문은 사라져도 신문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신문만큼 한 사회의 중요한 현안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매체는 없다. 대중적인 영향력은 감소했을지 모르지만 오피니언 리더들에 대한 영향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신문은 지속될 것이다. 물론 종이신문의 지속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종이는 신문을 담는 하나의 그릇에 불과하다. 기자들이 생산한 콘텐츠가 종이신문에 담겨 배달됐다면 디지털시대에는 아이패드용 신문 등 다른 방식으로 전달된다. 플랫폼은 다르지만 고도로 숙련된 기자들이 생산한, 우리 사회의 깊은 이야기를 담아낸 신문은 지속될 것이다.

이충재=자사 이기주의, 지나친 정파성, 자본에 대한 종속이 기자 개개인에게 열패감을 주고 자존감이나 명예를 훼손하는 요인들이다. 한국일보의 경우 기사의 비판성을 강화하고 그런 것이 신문에 나타나면서 사기가 높아졌다. 언론의 기본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사기를 진작시키는 방법이다.

-가벼운 질문을 하나 하겠다. 기자 생활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선배나 멘토(Mentor)는 누구인가.
이충재=송건호 선생이다. 송건호 선생은 자유언론 수호에 앞장서고 기자들의 지사정신을 강조했던 분이다. 기자들이 왜소해지고 샐러리맨화돼 가는 요즘 그 분이 자꾸 생각난다. 송건호 선생의 정신을 기자들이 되새길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박찬수=신문사 막 들어왔을 때 만난 시경캡하고 바이스캡이다. 그 선배들에게 기사를 보는 눈이라든가, 기사 쓰는 법 등을 배웠다. 단순히 스킬이 아니라 기자가 가져야 할 자질이나 품성 등을 배웠다.

전영기=편집국장으로 일하면서 ‘한국적 인간형을 어떻게 찾아낼까’ 고심하고 있다. 그런 생각을 갖도록 한 주인공은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다. 그는 ‘료마는 간다’ 등의 책을 통해 과거 일본의 역사에서 성공한 인물을 찾아 국민들에게 제시했다. 그가 찾아낸 인간형은 1960년대 당대의 젊은이들에게 일본을 한 단계 도약시켜야겠다는 강한 공동체 의식을 심어줬다. 사람들이 존경하고 어린이들이 배울 수 있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인간형을 찾는 데 시바 료타로는 자극을 주고 있다.

-신문사 편집국장들은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격무에 시달린다. 몇 시에 출근해서 몇 시에 퇴근하나. 그리고 업무로드 개선방안은 없나.
이충재=아침 6시30분에 출근해 밤 11시30분 넘어서 퇴근한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운동하며 오늘 지면을 고민한다.

박찬수=8시30분에 출근해 12시 넘어서 퇴근한다. 저녁약속이 있어도 밥 먹고 들어와 시내판 강판되는 것을 보고 퇴근한다.

전영기=9시30분쯤 출근해서 새벽1시에 집에 들어간다.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고 할 수 없는 게 편집국장 아닌가.

박찬수=편집국장이 챙겨야 할 행정 업무가 너무 많다. 인사나 각 부서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신문 제작 못지않게 하중을 준다. 행정 부국장이 있지만 최종 결정은 편집국장 몫이다. 그런 부분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나 자본권력에 의해 편집권이 침해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사주 또는 CEO로부터 편집권 간섭도 종종 있다. 편집권 독립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충재=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의 부당한 간섭에 사내 경영진과 편집국 기자들이 공동으로 대처하고 싸워야 하는 것은 이론이 없다. 문제는 회사 이익과 관련해 경영진 측에서 부당한 지시나 간섭을 했을 경우다. 회사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특히 편집국 기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일보는 지면 개선이나 편집국 운용 전반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민주언론실천위원회(민실위)가 있다. 기자들은 민실위를 통해 지면에 대한 비평이나 편집국 운용 전반에 대해 평가한다. 민실위는 편집권 독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언론사는 내부적으로 기자들의 비판적 목소리에 열린 자세를 갖고 수용하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전영기=중앙일보도 공정보도위원회가 있다. 매주 금요일 오전 10시에 열리는데 상당히 압박을 느낀다. 편집국장, 에디터, 논설위원들이 평기자들의 질문에 의무적으로 답변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서로 다른 철학과 가치를 공유하고 조정한다.

박찬수=경영진이 지면 제작에 관여하는 일은 없다. 편집국장 재직 4개월 동안 기사와 관련해 대표이사로부터 직접 전화 받은 경우는 없었다. 정치권력의 경우 신문 논조나 기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시대는 지났다. 문제는 자본권력이다. 한겨레는 2년 넘게 삼성광고가 전면 중단된 사례가 있었다. 기업과 관련된 부분은 앞으로 논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기사가 되면 쓰고 안 되면 쓰지 않는다. 기사 쓸 때 팩트 확인은 철저하게 하자’는 원칙을 세웠다. 원칙이 확고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정리=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사진=김성후·이대호 기자 dhlee@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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