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 치는 염전
제253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 / 세계일보 신진호 기자
세계일보 신진호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1.11.16 15: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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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일보 신진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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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염전에 농약을 살포하고 있는데….”
2004년 여름, 약초 취재를 위해 전남에 갔다가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이야 많이 알려졌지만 당시만 해도 생소한 ‘함초’ 등 염생식물이 소금 결정을 방해해 염전에 농약을 대량으로 뿌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염전 인근 주민들은 다 아는 얘기지만 천일염 산업에 미칠 파장으로 쉬쉬하고 있다고 했다.
취재원을 따라 전남 영광군 A염전에 갔다. 증발지에 들어서자마자 제초제인 ‘그라목손’과 살충제인 ‘지오릭스’ 등 농약병 수십 개와 함께 농약 살포에 쓰이는 고속분무기를 발견했다. 사진을 찍고 분석을 위해 소금을 구입했다. 하지만 모 연구원은 파장을 우려해 시료 분석을 거부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취재원도 돌연 취재협조를 거절했다.
전국 1100곳에 달하는 염전은 소금 전문가 또는 현지 주민이 아니고서는 위치를 파악하기도 힘들고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가 심해 외지인이 쉽게 들어갈 수도 없다. 취재원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이런 도움을 받지 못하니 취재를 포기해야만 했다. 아쉬움이 큰 만큼 다른 취재를 하면서도 항상 ‘농약 염전’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올해 3월 일본 후쿠시마원자력발전소 사고로 국내 천일염의 몸값이 치솟으면서 소금생산 실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6월 초 사전 약속 없이 취재원이 있는 전남에 내려가 설득한 끝에 취재 협조를 약속받았다.
취재팀이 7월26일부터 4일 동안 전남 해남군과 신안군, 영광군에 있는 8개 염전을 취재할 결과 모든 곳에서 7년 전과 동일하게 농약병과 함께 시커멓게 고사한 함초를 발견했다.
8월16일 보도 이후 파장이 커지자 농림수산식품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실을 알리기보다는 덮기에 급급했다. 정부는 토양조사를 외면한 채 소금에서 잔류농약성분이 검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입장이었다.
정확한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농식품부·지자체 관계자들과 공동으로 8월30일부터 이틀간 전남 8개 염전에 대한 현장조사에 나섰다. 8개 염전 가운데 상당수는 환경이 개선됐지만 해남의 한 염전에서는 7월26일 1차 취재할 때 발견한 그라목손, 지오릭스 병이 그대로 발견됐다. 증발지에는 여전히 말라죽은 함초를 목격할 수 있었다.
염전 8곳의 토양 시료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3곳(37.5%)에서 살충제 성분인 ‘엔도설판(상품명 지오릭스)’이 검출돼 세계일보의 보도가 사실임이 입증됐다.
취재팀은 60일간의 ‘농약 염전’을 취재하면서 지자체의 민·형사상 소송, 염전업자의 살해 위협 등 온갖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사회감시 기능이라는 언론 본연의 사명감으로 묵묵히 취재·보도했다.
신묘년도 저물어 간다. 임진년 새해에는 먹을거리 공포가 없는 안전한 한 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