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위원장 장례식 국내언론은 먼산보기

연합·한겨레 등 방북취재 불발…외신·북한언론 받아쓰기 불가피


   
 
  ▲ 평양 시민들이 21일 평양 김일성 광장의 인민대학습당에 내걸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대형 사진 앞에서 애도를 표하고 있다. (평양/AP=뉴시스)  
 
28일 열리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례식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한 민족인 국내 언론들은 또다시 외신과 북한 언론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국내 언론들은 대부분 현 정부 이후 얼어붙기 시작한 남북 관계 탓에 김정일 사망과 관련한 현지 취재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통일부에 공식적으로 방북 취재 신청서를 낸 국내 언론사는 ‘자주민보’가 유일하다. 자주민보는 통일부에 방북 취재 신청서를 공식 제출했으나 허가를 받지 못했다.

통일부의 한 관계자는 “자주민보를 제외한 국내 언론 중에 우리 부에 공식적으로 방북 취재 신청을 한 곳은 없다”며 “다들 정부의 불허 방침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는 보도전문채널 뉴스Y와 공동취재단을 파견하기 위해 접촉을 시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조문 방문단과 동행하기 위해 양측과 통일부에 의사를 타진했으나 실패했다.
연합뉴스 편집국의 고위 관계자는 “인원 제한을 둔다면 평양 특파원을 내정한 바 있고 조선중앙통신과도 기초적 교류가 있던 통신사인 우리가 가야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며 “북한이 반대하지 않았다면 정부가 전향적으로 검토했어야 하는데 아쉽다”라고 말했다.

한겨레도 이희호 여사의 조문 방문단에 취재기자 1명이 동행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정부가 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와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의 방북조차 불허하는 바람에 동행 취재 건은 거론도 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한인 언론 중에도 방북 취재를 하고 있는 곳은 ‘민족통신’을 제외하고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족통신은 기자 1명이 북한에 들어가 현지 상황을 취재하고 있다.

평양 현지에서는 중국과 러시아 언론 중심으로 취재가 이뤄지고 있다. 서방 언론 가운데는 현지 지국을 두고 있는 AP통신, APTN, 교도통신이 취재를 벌이고 있다.

북한 사정에 밝은 한 언론인은 “중국과 러시아 언론들은 자유롭게 취재하고 있다”며 “지국이 없는 서방 언론들 가운데 북한 현지 취재를 하는 곳은 없는 것으로 안다. 대사관이나 민간단체가 들어가 있는 나라들은 그쪽을 통해 취재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내 언론들은 일부 외신과 노동신문, 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회장의 조문 소식도 방문단이 통일부에 전해온 것을 두 단계를 거쳐 받아쓸 수밖에 없었다.

언론들은 통일부 등 정부의 정보도 이제는 별다른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북한 언론이나 외신에 나온 내용 이상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때만 해도 국가안전기획부가 운영하던 내외통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으나 시대 변화에 따라 옛 이야기가 됐다. 남북관계 경색 뒤 우리 정부의 대북 정보력 자체에 한계가 명확해 언론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한반도 정세에 엄청난 영향을 줄 북한 체제의 변화 과정 취재도 이 같은 형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라고 기자들은 입을 모은다. 확인되지 않는 각종 설이 기사화되는 폐단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북한 취재도 일상적으로 취재가 이뤄져야 이런 돌발 대형사건에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시적으로 현지 취재가 가능하다 해도 축적된 역량이 없으면 내실있는 보도가 이뤄지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정부 정책의 전향적 변화가 요구되는 이유다.

한겨레 편집국의 고위 관계자는 “우리 정부 당국과 북한 당국이 방북 취재의 두 관문인데 이번 정부 들어서는 북한 쪽 의사를 타진하기에 앞서 아예 이야기조차 꺼낼 여지가 없다”며 “어느 나라보다 가까이 있고 독자들의 관심도 높은 북한에 대한 취재가 봉쇄돼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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