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봄'은 오는가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KBS, MBC, YTN 방송 3사의 공동투쟁위원회 출범은 한국 언론사(史)에 무겁게 기록될 사건이다.

방송사 간의 연대투쟁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태우 정부가 강행한 서기원 사장 임명을 반대하며 ‘4월 투쟁’을 벌이던 KBS에 공권력이 무차별 투입됐다. 그래서 이름 붙여진 KBS ‘민주광장’에 흥건히 고인 눈물을 닦아주려 동료들이 나섰다. MBC와 CBS 언론인들이 동맹 제작거부에 들어간 것이다.

단체협약 상 공정방송 보장 조항을 놓고 불거진 MBC노조의 1992년 총파업 당시에도 공권력이 투입되자 KBS와 CBS는 동맹 제작거부를 결의했다.

1996년 정부가 재벌과 신문의 위성방송 소유를 허용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통합방송법 제정을 추진하자 KBS, MBC, EBS, CBS노조는 ‘방송법 개악저지를 위한 총파업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1999년에도 방송법 개악 저지를 위해 KBS와 MBC가 연대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그 이후에 몇 차례 언론노조 차원의 총파업이 성사됐으나 방송사끼리 연대 투쟁을 한 예는 줄어들었다.

이번 KBS, MBC, YTN의 공동투쟁 선언은 과거와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우선 3사의 내부 민주주의는 바닥을 치고 있다. 이들은 이명박 정부 출범 뒤 극심한 대내외적 갈등의 결과다.

KBS와 YTN에는 낙하산 논란 끝에 특보 출신 사장이 취임했다. MBC에도 대통령과 오랜 친교를 나눈 인물이 사장으로 입성했다.

저항했던 기자와 PD들의 ‘쓰나미 희생’이 뒤따랐다. YTN에서 6명의 기자가 해직된 게 예광탄이었다. MBC 역시 이근행 노조위원장과 정대균 진주MBC 노조위원장이 해직됐다. MBC는 1백 명이 넘는 사원들이 징계를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KBS도 전직 기자협회장, PD협회장이 해고 목전까지 갔다가 구성원들의 강력한 연대로 저지됐다.

한바탕 포화가 몰아친 뒤에 3사의 내부는 폐허가 됐다. 끊임없는 공정방송 논란과 부당 인사 시비가 이어졌다. 해직자들의 복직은 요원했다. 구성원들은 지쳤다.

시청자들은 하나 둘 이들 방송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SNS를 정치적 공론장 삼아 직접 행동에 나섰고 ‘나꼼수’와 ‘뉴스타파’ 등 대안언론에 열광하고 있다.

90년대의 방송사 간 연대투쟁이 방송 개혁과 민주화를 위한 전진이었다면 지금은 잃은 것을 되찾는 회복의 몸짓이다.

바야흐로 우리는 ‘방송의 봄’ 앞에 서 있다. 겨울이 물러가기 전에는 매서운 꽃샘추위가 온다. 해가 뜨기 직전의 어둠이 가장 깊다. 밤이 길게 느껴지는 것은 새벽이 눈앞에 있다는 징후다. 인내할 수 없을 만큼 후퇴된 방송 민주주의는 꽃샘추위와 일출 직전 암흑의 다른 얼굴이다.

우리는 1980년 ‘서울의 봄’을 기억한다. ‘서울의 봄’을 상징하는 143인 시국선언은 여러모로 언론과 인연이 깊다. 선언문의 초안은 1999년 기자협회보가 현직 언론인 조사를 통해 ‘20세기 언론인’으로 선정한 바 있는 청암 송건호 선생이 기초하고 수많은 언론인이 선언에 동참했다. 선언의 요구사항에도 ‘언론자유 보장’은 명백히 아로새겨져 있었다. 당시 시국선언은 마침 법원 기자실에서 발표됐다.

그러나 이를 보도한 언론은 하나도 없었다. 신군부의 폭압 때문이었다. 언론인이 그토록 애타게 불렀던 봄은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7년간의 진통 끝에서야 꽃을 피웠다.

그러나 2012년 ‘방송의 봄’은 다르다. 더 이상 물러서려 해도 물러설 곳이 없다. 무엇보다 자각한 시청자, 시민이 있다. 이제는 시민이 언론을 일깨우고 일으켜 세우고 있다. 방송 3사 언론인들이 맞잡은 손은 ‘서울의 봄’과 ‘프라하의 봄’과는 다른 성공의 역사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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