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세월 끝낼 마지막 싸움

[특별기고] 강나림 MBC 기자


   
 
  ▲ 강나림 MBC 기자  
 
2007년 12월 19일은 개인적으로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MBC 기자 사령장을 받은 그 날은 꿈꾸던 일과 일터가 모두 현실이 된, 그야말로 꿈같은 날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날은 지금의 대통령, 이명박이 당선된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때 함께 사령장을 받아 든 기자 동기들과 농담처럼 “우리는 시작이 심상치 않다”는 말을 했습니다. ‘선배들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 상상 이상일 거라고 걱정하더라’는 풍문을 주워듣고는 “그러게, 걱정이네” 한 마디 하고, 그냥 그렇게 넘어간 것이 생각납니다.

그때는 저와 제 동기들은 물론 그 누구도 몰랐습니다. 짧다면 짧은 5년이라는 시간 동안 MBC가 이토록 처참하게 망가질 거라고 그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요. 이명박 취임 이후 5년 사이에 다섯 번의 파업이 이어졌고, 보도국 기자들은 여기에 두 번의 제작 거부까지 더 해야 했습니다. 그 사이 내가 꿈꾸던 언론사 MBC의 모습은 사라지고, 또 내가 되고자 했던 기자의 모습도 배울 겨를 없이 고민만 거듭하며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업(業)보다 파업(罷業)의 기억이 더 많았으니까요.

“MBC는 맨날 파업만 하냐”는 핀잔을 수없이 들어야 했던 지난 5년은 참으로 부끄러운 시간이었습니다. “MBC가 변했다, MB의 방송이 돼버렸다”며 욕하는 시민들 앞에서 부끄럽고 “현장에서 투쟁하자”며 힘겹게 파업을 접고 복귀한 뒤 정작 그러지 못했던 스스로와 동료, 선후배들 사이에서 또 부끄러웠습니다. 지금 우리의 싸움은 그 오랜 시간 억지로 외면하고 억눌러왔던 부끄러움과의 싸움입니다. 망가져가는 뉴스와 조직을 붙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우리도 괴롭다고 애써 변명해왔던 시간에 대한 반성입니다. 

지난 다섯 번의 파업에서 우리에겐 승리의 기억이 없습니다. 우리가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MBC가 공영방송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해달라는 한결같은 요구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 싸움은 매번 조직에 엄청난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이번 싸움을 시작한 건, 망가질 대로 망가진 MBC를 더 이상 억지로 안고 갈 수 없어서입니다. 완전히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절박함 때문입니다. 이번 싸움이 그간의 부끄러운 세월을 끝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압니다.

5년 전, 기자 사령장을 받던 날의 결심을 기억합니다. 내 이름 석 자 뒤에 붙은 MBC기자라는 직책이 부끄럽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것, 이번 파업은 그 결심을 실현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 될 겁니다. 그리고 이번 싸움에서 저와 동료들이, MBC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공영방송 MBC’를 반드시 되찾아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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