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만에 보도된 살인범의 실명

[글로벌 리포트│일본]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 이홍천 게이오대학 교수  
 
사형판결을 받은 소년의 실명보도를 둘러싸고 일본 언론의 보도윤리가 도마에 올랐다. 지난 2월 20일 일본 최고법원 제1소법정은 1999년 야마구치현에서 모자 살해사건으로 살인 및 강간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은 소년(당시)의 상고심을 기각, 사형판결을 확정했다. 재판관 4명 중 한 명이 반대의견을 제시하고 1,2심의 무기징역 판결을 상급심에서 파기함으로써 사형판결이 확정된 경우는 1945년 이후 세 번째, 이례 중의 이례다.

판결 이후 신문, 방송, 통신 등 대부분의 언론사들은 피고의 얼굴 사진과 실명을 21일부터 일제히 게재하거나 방송했다. 소년의 실명이 보도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8년. 사회갱생과 복귀가 방해받지 않도록 본인을 특정할 수 있는 보도를 금한다는 소년법의 취지를 따른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실명보도로 방침을 바꾼 반면 마이니치, 도쿄, 니시니혼 신문만이 소년법의 취지를 살려 익명보도 원칙을 고수했다. 사건 당시 18세1개월이었던 소년은 올해로 30세 청년이 되었다.

각 언론사들은 21일자 신문 1면에 실명보도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최고법원의 사형이 확정될 가능성이 높아져서 실명보도로 전환한다. 국가에 의해서 사형판결을 받는 대상을 밝힐 필요가 있다.”(아사히 신문), “사형이 확정되면 갱생의 기회가 없어진다. 사형수가 누구인지는 중대한 사회적 관심사.”(요미우리 신문), “사형이 확정되어 사회복귀를 전제로 한 갱생의 기회가 사라졌다. 사건의 중대성을 고려해서 20일부터 실명으로 전환한다.”(산케이 신문), “최고재판부의 사형판결이 확정되어서 실명으로 전환한다. 피고의 갱생의 기회가 사라졌다.”(닛케이 신문), “흉악하고 중대한 범죄로 사회적 관심이 높고 사회복귀를 위한 갱생의 가능성이 사실상 없어졌다.”(NHK)

이에 대해서 익명보도 원칙을 고수한 마이니치 신문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소년의 익명보도를 계속할 것이다. 모자의 귀중한 생명을 빼앗아 간 비도덕적인 사건이지만 소년법의 이념을 존중해서 익명보도 원칙을 바꾸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 소년법은 갱생을 목적으로 하지만 사형판결 확정으로 그 가능성이 없어졌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렇지만 갱생은 반성, 신앙에 의해서 마음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고시엔 사전). 피고는 갱생을 위해서 피해자 유족에게 마음으로부터 사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또 향후 재심, 사면이 인정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또 도쿄신문은 “재심, 사면 제도로 갱생의 가능성이 사라졌다고 할 수 없다”며 익명보도를 변경하지 않는 이유를 들었다.

마이니치신문은 25일자에 각사의 실명, 익명보도 여부를 조사한 기사를 이례적으로 게재했다. 재경신문, 사건이 발생한 야마구치현의 지방지, 통신사, NHK, 민방 키국 등 15개사를 조사한 결과 12개사가 실명보도로 전환한 반면 마이니치, 도쿄, 니시니혼 등 3개사가 익명보도를 고수했다. 산케이신문도 21일자에 보도각사의 실명,익명 여부를 도표와 함께 게재했다.

일본의 소년법의 익명 보도규정은 갱생지원 대상으로 사형 확정자도 포함시키고 있어 문제는 더욱 복잡하다. 일본 변호사협회 우쓰노미야 겐지 회장은 실명보도 자체가 피의자의 갱생 가능성을 없앴다면서 언론보도를 비난했다. 실명보도로 전환한 언론사들은 갱생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에 대해서 어떤 근거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이 보다는 경쟁 타사도 실명보도를 할 것 같다, 독자가 실명을 알고 싶어한다, 사형판결을 받은 이상 성인과 같이 이름을 밝혀야 한다는 경쟁심리가 작용한 것이 본심이 아닐까.

이에 대해 실명보도에 관한 저술을 출판한 교도통신 사와 야수오미 기자(뉴욕지국 차장)는 사형수의 실명이 공개되지 않는 사회야말로 불투명한 사회라고 반박한다. 익명성 원칙은 본래 가해자의 보도피해를 줄여보자는 배려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려는 저널리즘의 원칙에는 위배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피해자의 프라이버시가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해자의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는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언론의 피의자의 익명성에 더해 바이라인이 게재되지 않는 저널리스트의 익명성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사작성의 실명제를 통해서 저널리스트는 보도대상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게 된다. 보도의 실명제에 앞서 저널리즘의 실명제가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 일본 언론의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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