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시행착오 떠안는 외주제작사들
'조기종영' 투자비도 못건져…눈치보느라 불만도 '쉬쉬'
이대호 기자 dhlee@journalist.or.kr | 입력
2012.03.21 15:06:08
“생존권 사수 차원에서 집단 피해소송을 비롯해 제작거부까지도 불사하겠다.” 지난 13일 종편사의 불공정행위에 성명서를 발표하며 종편사와 일전을 불사할 기세였던 독립제작사협회가 1주일 만에 꼬리를 내리는 분위기다. 성명서에서 스스로 밝혔듯 ‘갑’인 종편사에 어쩔 수 없는 ‘을’이란 처지 때문이다. 독립제작사협회에는 현재 130여 개의 외주제작사가 가입해 있고, 이중 20여 개 사가 종편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협회에 따르면 성명서 발표 후 다수의 언론이 이 문제를 기사화했지만 정작 종편사들은 협회에 어떤 공식적인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제작사들이 협회에 정면대응 자제를 요청하고 나왔다. 기사에서 불공정행위 피해사례로 소개된 제작사들이 종편사로부터 집중적인 압력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협회는 파악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서 협회가 “불사하겠다”고 한 종편에 대한 집단 피해소송이나 제작거부도 탄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집단 피해소송은 피해를 입은 제작사가 나서야 하는데 종편사 눈치를 보느라 쉽지 않다. 제작거부도 전체 회원사의 결의가 필요하지만 종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회원사가 소수이고 비회원사인 제작사도 많아 어렵다.
종편사들이 제작비를 줄이느라 외주 제작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뉴스나 재방송으로 대체하고 있어 제작거부의 효과가 미미할 것이란 점도 제작사와 협회가 힘이 빠지는 한 요인이다.
협회 배대식 기획팀장은 “종편사들의 월권과 횡포를 까뒤집고 싶지만 회원사들이 종편의 압력을 하소연하는 바람에 중간에서 힘들다”며 “영세한 외주제작사가 거대 신문을 등에 업은 종편사를 상대하기란 계란으로 바위치기임을 절감한다”고 호소했다.
협회가 밝힌 종편사들의 불공정행위는 다양하다. 계약도 없이 제작을 먼저 하고 제작비용을 지급하지 않는 행위, 계약을 했더라도 지상파보다 더 불리한 조건을 추가하는 행위, 제작비를 일방적으로 삭감하고 편성을 수시로 바꾸는 행위, 협찬금 분배의 불공정행위 등이다.
이 가운데서도 제작사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경우는 종편사의 프로그램 조기 종영이다. 협회가 회원사들을 통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종편사들이 개국 후 조기 종영한 프로그램은 20개에 달하고 채널A가 8개로 가장 많다. 한 제작사는 5000만원짜리 버스를 세트로 하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가 4회 만에 종영하는 바람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JTBC의 ‘우보기행’은 단 1회 방송하고 종영했다.
배 팀장은 “초기투자비를 회수하려면 최소한 6개월은 방송해야 한다”며 “종편사들의 시행착오와 종편의 한계로 인한 조기 종영 피해를 고스란히 제작사들이 떠안는 꼴”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