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들의 뉴스데스크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편집위원회 webmaster@journalist.or.kr | 입력
2012.03.28 16:10:06
사상 초유의 언론사 공동파업의 계기가 된 MBC의 파업이 벌써 두 달을 넘겼다. 그동안 간판 뉴스프로그램인 뉴스데스크는 파업여파로 10여 분으로 축소됐다가 요즘은 30분 정도로 모양새를 유지하고 있다. 소수지만 파업에 참가하지 않고 있는 기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공정방송을 되살리겠다고 파업한 동료들과는 다른 선택을 한 이들, 당연히 이 기자들은 낙하산 사장 아래서도 방송보도의 공정성에 심각한 문제는 없었다고 보기에 파업 대신 보도국에 남아 제작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파업에 불참한 MBC 기자들이 만들고 있는 현재의 뉴스데스크는 얼마나 공정한가?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먼저 총리실 민간인 사찰과 증거인멸 의혹의 핵심인 이영호 전 청와대비서관의 기자회견을 다룬 지난 20일 뉴스데스크 톱 리포트. 이례적으로 이 전 비서관의 육성녹음을 한 리포트 안에 무려 세 차례나 넣은 이 보도는 믿을 수 없게도 기사의 모든 문장의 주어가 이 전 비서관이었다. 즉 기자회견문 요약 그 자체였다. 돈을 건넨 건 인정하지만 증거인멸을 시도한 것은 아니었다는 해명은 물론 심지어 “애초에 불법사찰은 없었다”는 주장까지 아무런 가치판단 없이 그대로 전하고 있다. 이미 불법사찰 그 자체는 법원의 유죄판결이 난 사안인데도 말이다. 대신 이 리포트는 “청와대 개입의혹을 제기하는 건 정치공작”이라며 야당대표에게 공개토론을 하자는, 다른 언론매체에선 소개도 안했던 이 전 비서관의 황당한 제안을 열거하며 끝을 맺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주요일간지들이 ‘내가 몸통이라는 깃털의 자백’ 등 정곡을 찌른 제목을 달고 의문을 제기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보도태도였다.
한·미 FTA 발효시점에 나온 뉴스데스크의 보도들도 편파시비에 휘말려 있긴 마찬가지다. 미국산 수입품의 가격인하 같은 장점만 강조되고 우리 취약산업의 기반 약화 같은 부작용은 형식적으로만 다뤄졌다. 특히 파업기간에 급히 채용된 계약직 기자가 FTA보도에 동원되면서 “편파보도하려고 계약직 뽑았나”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이대로라면 어느 때보다 엄정한 공정성이 요구되는 총선보도도 편파성 시비를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파업 중인 방송사의 기존 뉴스들이 점점 더 균형을 잃어가는 반면 거리로 나선 기자들이 ‘리셋 KBS9’과 ‘제대로 뉴스데스크’를 통해 그 전엔 방송할 수 없었던 뉴스를 선보이는 지금의 상황은 그래서 더 안타깝고 한국 방송저널리즘의 위기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파업을 택한 기자들이 공정방송 부활이란 목표를 국민들에게 설명하는 것처럼 파업 대신 잔류를 택한 기자들도 자신들 선택의 정당성을 증명해야 한다. 낙하산이라고 비판받는 사장들이 자리를 지켜낼 수 있게끔 방송뉴스를 계속 제작해 주는 것은 조직에 충성하는 사원들의 임무는 될 수 있어도 뉴스의 전달자인 기자들의 직무는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이번 공동파업을 공정성 문제와는 무관한 ‘정치파업’이라고 비판하고자 한다면 우선 지금의 ‘뉴스데스크’ 혹은 ‘뉴스9’부터 어느 정치세력에도 치우치지 않았다는 공정성을 전제해야 한다. 거리로 나간 기자들만큼이나 회사에 남은 기자들도 저널리스트로서의 ‘독립성’을 스스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