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불신 부르는 현직 언론인 정계 진출

한국기자협회 온라인칼럼[김주언의 미디어거울]

 



   
 
  ▲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  
 

선거 때만 등장하는 논란거리가 있다. 현직 언론인의 정계 진출이 그것이다. 어제까지도 신문에 정치관련 칼럼을 쓰던 언론인이 오늘 아침에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최소한의 언론윤리인 정치적 중립의무를 저버렸다는 비난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각 정당들은 이번에도 많은 언론인들을 영입해 후보로 내세웠다. 일부 언론인들은 스스로 정당의 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이중 얼마나 많은 언론인 출신들이 의정단상에 서게 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고 있는 이상일 전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 당선권에 들어선 비례대표로 총선에 나섰다. 이 대변인은 비례대표 신청을 한 뒤에도 5일이나 더 신문사에 근무했다. 고정칼럼도 평상시처럼 썼다. 게다가 비례대표 신청 하루 전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초청 관훈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하기도 했다.

정치인으로 변신한 그의 행적을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 이전의 행태가 언론인으로서의 직업윤리를 망각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대변인은 논설위원 시절 ‘이상일의 시시각각’이라는 칼럼을 통해 새누리당과 박근혜 비대위원장에게 우호적인 글을 주로 써왔다. ‘박근혜, 눈물 흘리지 않으려면’ ‘손수조 공천 장난일까요?’ 등은 노골적으로 새누리당을 치켜세우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더구나 비례대표 신청 10여일 전에는 관훈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해 박 위원장에게 우호적인 질문을 던졌다. 웬만한 얼굴 두께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언론인의 정치인 변신을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헌법에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 때문만은 아니다. 언론인으로서 쌓은 전문성과 경륜을 국민을 위해 활용한다면 반길만도 하다. 그러나 ‘비밀당원’으로 언론사에 숨어서 암약하다가 하루아침에 본색을 드러낸다면 뜨악할 수밖에 없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으로 변신한 언론인 중에는 신경민 민주통합당 대변인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는 비난이 쏟아지지 않는다. MBC에서 정년 퇴직한 데다 현직을 끝낸 지도 1년여가 넘었기 때문이다.


현직 언론인의 정치권 진출은 남아 있는 동료 언론인들을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한다. 지난 2008년에는 이번과 똑같은 사태가 벌어져 물의를 빚었다. 그것도 중앙일보였다. 현직 논설위원이었던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지역구 공천 제의를 받고 사표를 제출했다가 하룻만에 사표 반려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당시 중앙일보 노조는 기자들의 정당가입을 금지하고 선거일 90일 전에는 정치관련 기사와 논평, 칼럼을 쓰지 못하도록 ‘기자윤리강령’을 제정해 시행했다.

그러나 윤리강령은 휴지조각에 불과했다. 당시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이었던 김 전수석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틀 뒤 청와대 정무2비서관에 발탁돼 임명당일 퇴사했다. 문제는 비서관 임명 2일전까지 중앙일보에 고정칼럼을 연재했다. 출마를 위해 사표를 냈다가 반려를 요구해 윤리강령까지 제정했지만, 불과 3년만에 청와대로 자리를 옮겨 동료 언론인들의 분노를 샀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리듯 언론계의 자정 흐름을 거꾸로 돌려 놓은 셈이다.


친정 언론사 위한 돌격대 역할도

더욱 커다란 문제는 언론사 경영진이 오히려 자사 언론인들의 정치권 진출을 내심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김두우 전 비서관의 사례처럼 ‘문제있는’ 언론인에게 고정 칼럼을 다시 맡기고 정치권 진출을 목표로 하는 언론인들에게는 경력관리를 해주기도 한다. 자사 출신 언론인의 국회의원 당선을 위해 지면을 통해 간접적인 선거운동을 하거나 청와대에 진출하도록 정치권에 청탁하기도 한다. 자사 출신 정치인들을 통해 정보를 얻거나 이권청탁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많은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은 실제로 ‘친정 언론사’의 이권을 위한 ‘돌격대’ 역할에 충실했다.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로 불리는 이유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종편채널의 탄생에 발판을 마련한 ‘미디어법 파동’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여당 위원 18명중 3분의1에 해당하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출신 의원들은 이른바 ‘기자소위’를 구성하여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허용하는 미디어법 개정에 앞장섰다.

중앙일보 출신 고흥길 위원장이 2009년 2월25일 미디어법을 직권 상정한 뒤 이들은 야당의원들과 몸싸움을 벌였다. 조선일보 출신 진성호의원과 김효재의원은 같은 해 7월20일 여야 원내대표가 2012년까지 신문의 지상파 진출을 금지키로 합의 한 데 항의하여 판을 뒤집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고 위원장은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협상안(구독률 17%) 에 대해 “조선과 중앙은 꼭 들어가야 한다”고 반발해 협상안이 철회됐다.  



   
 
  ▲ 2009년 12월 민주당 천정배, 최문순, 장세환 의원 등이 국회 본회장앞 로텐더홀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의 헌재결정 수용과 미디어법 재논의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뉴시스)  
 
미디어법 직권상정에 회의적이었던 박근혜 의원을 설득한 의원들도 홍사덕(중앙일보) 이경재(동아일보) 등 언론인 출신이었다. 미디어법을 직권 상정한 이윤성 부의장은 KBS 출신이다. 이후 헌법재판소가 미디어법 처리과정의 위법을 지적하며 국회에서 시정토록 권고했으나 김형오의장(동아일보 출신)은 이를 무시했다.

언론인 출신 의원들은 종편채널이 등장한 이후 애프터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MBC 아나운서 출신 한선교 의원과 진성호 의원은 종편의 직접 광고영업을 허용하는 미디어렙법안을 제출했다. 특히 한선교 의원은 KBS 수신료 인상과 관련한 야당의 비공개 회의 도청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수신료 인상을 통해 KBS 2TV의 광고를 축소하여 종편의 먹을거리를 마련해주려 한 것이다.

언론인 출신 의원들은 이명박 정부의 언론탄압에 앞장서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8월 정연주 KBS 사장을 어거지로 해임하기에 앞서 KBS 출신의 이윤성 전여옥 안형환 신성범 의원은 정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정부에 비판적인 후배 언론인과 방송 프로그램의 축출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출신 최구식 의원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보도한 MBC ‘PD수첩’ 제작진의 퇴출을 요구했다. 특히 최 의원은 한나라당 해체 위기를 불러온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테러사건으로 입방아에 올랐다. 같은 신문사 출신인 진성호 의원도 이와 관련해 당시 엄기영 MBC 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MBC 출신인 심재철 의원은 PD수첩 ‘광우병’ 편이 자신의 발언을 왜곡했다며 5억원 상당의 명예훼손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현직 언론인 정치권 진출에 유예기간 둬야

국회가 아닌 정권의 핵심으로 진출한 언론인 출신 폴리널리스트들은 여론조작에 앞장서는 ‘스핀닥터’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게다가 정권 말기에 들어서는 각종 비리혐의로 구속돼 재판중이거나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조선일보 출신)은 새누리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중앙일보 출신)은 부산저축은행 구명 청탁과 금품수수 혐의로, ‘실세차관’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조선일보 출신)은 이국철 SLS 회장으로부터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MB의 멘토’로 불리던 ‘방통대군’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동아일보 출신) 역시 측근의 로비 의혹과 여당 의원들에게 돈 봉투를 뿌린 의혹으로 사퇴했다. 특히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노골적으로 발 벗고 나서서 종편 4사에 특혜를 쏟아 부었다. 케이블 방송의 황금채널 배정을 압박하는 등 전방위 특혜를 밀어붙였다. 대기업 광고 책임자들을 불러다 놓고 광고 압박을 한 정황도 여러 차례 포착됐다.

물론 언론인 출신 정치인들이 모두 이런 것은 아니다. 언론인 시절 갈고 닦은 경륜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치권을 쇄신하는 데 앞장서 정치개혁에 일조한 이들도 많다. 따라서 언론인 출신이라고 해서 정치권으로 진출하는 것을 나무랄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권 진출을 위해 언론인을 징검다리로 삼아 정치권의 눈치를 살펴가며 활동한다면 정치적 중립이라는 언론윤리를 심각하게 훼손하게 된다. 언론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현직에서 직접 정치권에 진출하지 못하도록 3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는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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